형편이 넉넉하지도 않은 농부가 매년 100만원씩 9년째 장학금을 내놓고 있다.
충북 보은군 탄부면 매화리에 사는 류제덕(61)씨는 3일 탄부면사무소를 찾아 “형편이 어려운 학생 뒷바라지에 써달라”며 100만원을 담당 공무원에게 전달했다.
류씨가 돈을 기탁하기 시작한 건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면사무소를 슬그머니 찾아온 그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게 한이다. 나처럼 돈이 없어 공부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며 장학금 기탁 방법을 물었다. 면사무소 직원과 상의 끝에 대뜸 “1,000만원쯤 기금을 내겠다”고 약속한 그는 한꺼번에 많은 돈을 만들기가 쉽지 않자 10년간 매년 100만원씩 나눠내기로 했다. 이후 그는 연초만 되면 어김없이 면사무소를 찾아 100만원권 수표 한 장이 담긴 봉투를 전해주고 있다.
적지 않은 돈을 선뜻 내놓고 있지만 류씨는 그리 넉넉한 살림은 아니다. 2남 1녀를 모두 출가시킨 뒤 동갑내기 부인과 함께 일년 내내 땀흘려 벼농사와 고추농사를 짓지만 수입은 겨우 생계를 유지할 정도다. 과묵하게 농사만 짓던 그가 매년 선행을 베풀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자 동네 사람들은 ‘고추 장학금’이란 별칭을 지어주기도 했다.
탄부면사무소가 그의 기탁금을 관리하기 위해 ‘탄부면 장학회’라는 이름으로 개설한 통장에는 류씨가 9년간 내놓은 돈에 이자까지 붙어 어느새 1,100여만원이 쌓였다. 면사무소는 류씨의 순수 기탁금이 1,000만원이 되는 내년에 주민자치위원회와 협의해 그의 이름을 딴 장학재단을 설립할 생각이다. 장세종 면장은 “류씨가 이름 알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며 “본인이 극구 사양하면 다른 독지가의 성금과 합쳐 장학회를 설립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씨는 29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자랑할 게 뭐 있느냐”며 기자와의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했다.
보은=한덕동 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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