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유신정권 시절 긴급조치 위반사건에서 유죄판결을 내린 판사 중 상당수가 현재 사법부의 고위직에 재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이번 주 중 이들 판사의 실명과 판결 내용을 공개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법원이 반발하고 있다.
29일 과거사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당시 재판에 참여, 유죄판결을 내린 판사들 중에는 현재 대법관 3명과 헌법재판관 3명이 포함돼 있다. 또 법원장 등 고위 간부 수십 명이 현직에서 일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8명의 전직 대법원장과 전직 헌법재판소장 2명도 긴급조치 사건에 유죄판결을 내린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긴급조치란 4공화국 헌법(유신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특별권한으로, 1974년1월~79년12월까지 박정희 정권 말기의 대표적 반정부 세력 탄압 수단이었다.
과거사위는 긴급조치를 위반한 혐의로 열린 589개 사건의 1ㆍ2ㆍ3심 1412건 재판 결과와 관련한 판결 내용과 판사 명단을 담은 보고서를 이번 주 발표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29일 밝혔다.
법원은 과거사위의 법관 명단 공개 방침에 대해 여론몰이라며 경계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이 바뀌진 않는 한 판사가 법을 무시하고 판결하기가 쉽지 않다”며 “실정법에 따라 판결한 것을 현재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지나친 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판사의 실명은 당시 판결문을 통해 공개됐으며 일부 고위 법관들은 국회 청문회 등을 통해 이미 검증된 부분이 있다. 이런 식으로 판사의 실명이 집단 공개되면 자칫 현직 판사들에 대한 흠집내기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의 한 판사는 “과거 판결이 현 시점에서 잘못됐더라도 타 기관이 이를 검증하는 것은 재판권 침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사법부의 과거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일고 있다. 한 변호사는 “실정법에 따라 판결했다고 하지만 억울하게 희생되거나 옥살이를 한 사람들에 대해 법원과 검찰도 분명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정리를 하고 가는 것이 이용훈 대법원장이 주장하는 사법개혁에도 힘이 실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상진기자 okom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