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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레임덕과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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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레임덕과 사냥꾼

입력
2007.01.3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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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진보적 권위지 가디언은 매일 이색 소재를 사설로 다루는 칭찬 시리즈, 'In praise of…'를 싣고 있다. 지난 주 하루는 정말 특이하게 총 맞은 오리, 진짜 레임덕 이야기를 소개했다. 대충 이런 줄거리다.

미국 플로리다의 사냥꾼이 총으로 잡은 오리를 부엌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이틀 뒤 아내가 무심코 냉장고를 열자, 오리가 반기듯 고개를 쳐들었다.

당연히 죽은 줄로 알았던 미물이 되살아 났으니 기절할 일이다. 그래도 부인은 동정심이 돈독했던지 수의사에게 달려갔다. 다리와 날개에 총상을 입은 오리는 그렇게 목숨을 건져 야생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이야기다.

레임덕 대통령 날개 짓에 야당 혼란

가디언은 야생동물의 강인한 생존의지를 본받을 만하다고 논평했다. 사설 성격에 비춰 애써 숨은 메시지를 찾을 건 없다. 그러나 저절로 우리의 레임덕 대통령을 떠올렸다. 다리가 부러지고 날개가 꺾인 처지에서도 "나는 날 수 있다"고 외치는 모습이다. 물론 감동과 동정이 많지 않은 형편이라 얼마나 기력을 되찾을지 모르나, 사냥꾼을 머쓱하게 만든 의지는 인정할 만 하다.

대통령을 칭찬할 뜻은 없다. 그보다 플로리다 사냥꾼의 허술함을 닮은 우리 야당과 보수세력의 사냥솜씨를 짚고 싶다. 가디언 사설은 총맞은 여우를 몽둥이로 두들기고 숨통을 짓밟는 영국의 사냥관행을 상기시켰다. 늘 인자한 엘리자베스 여왕도 잔혹한 전통을 좇는 왕실사냥 현장을 웃으며 지켜보는 모습이 공개돼 여론의 입 방아에 오른 적이 있다.

우리 야당과 보수세력도 그만 못하지 않아 집요하게 사냥 감을 물고 질근질근 씹는다. 다만 그런데도 레임덕 대통령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는 것에 내심 혼란스러운 눈치다.

몽둥이질이 어설픈 때문이 아니다. 애초 사냥 대상과 수단을 잘못 고른 탓이 크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초래한 실패를 기필코 만회하겠다면서도, 레임덕 대통령의 날개 짓을 비웃고 꺾어 누르는 데만 매달리는 좁은 안목이 문제다. 플로리다 호수의 오리 떼처럼 무수한 국민의 여망을 올바로 조준하지 못하는 것이 근본적 한계라고 본다.

정권 탈환이 떼 논 당상인 데 무슨 객쩍은 소리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싫증 난지 오랜 대통령이 갈수록 절뚝거린다고 해서 야당을 보는 국민 눈길이 날로 따뜻해질 것으로 여긴다면 착각이다. 여론조사에서 대통령과 여당 지지도가 추락하는 만큼 야당과 유력 대선주자에 대한 지지가 늘고 있지만, 과연 얼마나 적극적이고 견고한 지 냉정하게 살피는 게 좋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주말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가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는 흥미롭다. 보수언론은 유권자들의 이념성향이 진보가 많이 줄어든 대신 중도와 보수가 늘어 5년 전 진보 우세가 중도 우세로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주목할 것은 다음 정부가 지향할 정책방향과 관련, 경제사회 분야에서는 진보 개혁과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가 훨씬 많은 점이다.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의 구호와는 크게 어긋난다. 대선이 레임덕 대통령과 맞붙는 게 아니라면, 뭘 어떻게 겨냥해야 옳은지 다시 생각할 일이다.

국민이 바라는 비전 제시해야

특색 없이 막연한 '경제 살리기'를 외치는 야당 주자들에게서 눈에 띄는 것은 경부 대운하와 한중 열차페리 구상을 다투는 정도지만 이마저 새로울 건 없다. 영국경제를 되살린 대처 총리를 새삼 모범으로 삼는 것은 한층 구태의연하다.

14년 야당신세를 벗어나려는 영국 보수당이 "21세기 영국 사회는 20세기에 대한 향수가 없다"고 선언, 처칠과 대처 전 총리가 상징하는 보수이념 전통을 허물고 국민에게 다가가려 애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 보수당의 새로운 비전을 대변하는 젊은 당수 캐머런은 이렇게 역설했다. "보수당의 실패는 낡은 유산에 얽매여 보통 국민이 바라는 것보다 보수당과 보수언론이 원하는 것만 되뇐 때문이다". 여의도연구소 여론조사결과를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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