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중국, 인도 등 아시아 경제대국들이 세계 인수합병(M&A)시장을 싹쓸이하고 있다. 기업사냥을 통해 몸집을 불리면서 시장지배력도 빠르게 확대되는 추세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M&A밖에서만 맴돌고 있다. 오히려 사냥의 먹잇감이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2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중국 기업들은 해외M&A시장에서 가장 왕성한 '식욕'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중국건설은행이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아시아 17개 지점을 인수한 것을 비롯, 지난달엔 중국은행이 아시아 최대의 항공기 리스사인 세일사를 전격 합병했다.
중국 최대 민간 자동차부품업체인 완샹그룹도 포드자동차와 부품 사업부문 인수협의를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기업들의 이 같은 해외진출은 '저우추취'(走出去:밖으로 달려나가자)' 전략을 앞세운 중국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따라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전 세계 투자자금이 중국으로 몰려들고 있는데다 상하이 주식시장 활황으로 자금력이 커진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배경이다.
중국과 함께 잠재 경제대국인 인도기업들도 몸집 불리기에 한창이다. 인도굴지의 타타그룹이 지난해 미국 건강음료 업체인 글락소의 지분 30%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인 예.
지난해 1~9월 인도 기업들의 해외 M&A규모는 총 72억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45억달러) 실적을 크게 웃돌았다. 지난해 프랑스 아르셀로를 인수해 세계최대 철강사로 떠오른 미탈스틸도 기업국적 자체는 영국기업이지만, 오너와 자본성격은 인도계다.
일본 기업들도 '잃어버린 10년'의 오랜 동면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해외M&A를 통해 아시아 경제맹주 자리회복을 노리고 있다. 도시바가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원전 부문을, 닛폰판유리가 영국 필킹턴을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 사례.
일본담배산업은 영국 갤러허를 일본 M&A 사상 최대규모인 190억달러에 인수키로 합의했다. 지난해 1~11월 일본 기업들이 해외 기업을 M&A한 규모는 5조3,000억엔으로 2005년의 3.3배에 달했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너도나도 '글로벌 경쟁력'을 외치지만, 정작 해외 M&A실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두산중공업이 지난해 발전분야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영국의 미쓰이밥콕을 인수한 것이 거의 유일하다.
그렇다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기업유보자금도 많고, 무엇보다 국내 전반에 유동성이 넘쳐 난다. 금융계의 한 고위인사는 "풍부한 국내유동성을 해외M&A로 연결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우리나라도 칼라일이나 뉴브지리 같은 사모펀드(PEF)가 보다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기업들은 현재로선 사냥꾼 보다는 오히려 사냥감쪽에 더 가깝다. 은행권에선 외환(론스타) SC제일(스탠다드차다드) 씨티 등 3개 은행이 외국주주에 완전인수됐고, 국민 하나 등 대형시중은행들도 외국인지분이 절반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지난해엔 KT&G가 적대적M&A에 노출됐고, 국내 간판기업인 포스코 역시 미탈사 등 끊임없는 피인수설에 시달리고 있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팬택계열 역시 글로벌 휴대폰 메이커로부터 입질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문지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우리 기업들이 사냥감이 되는 사태를 피하려면 스스로 적극적으로 해외M&A에도 눈을 돌리고 M&A가 힘들 경우에는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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