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는 20세기 전반까지 세계 미술의 중심지였다. 온갖 현란한 미술사조를 탄생시켰던 파리는 2차 대전 후 찬란한 명성을 점차 미국 뉴욕에 빼앗기기 시작했다.
미술을 뒷받침하는 경제력과 왕성한 창조적 분위기를 따라 중심축이 뉴욕으로 옮겨간 것이다. 그러면, 현대미술의 변화를 이끌어간 주역은 누구인가. 그들은 또 다른 나라인 스페인의 화가라고 말할 수 있다. 탁월한 재능과 기발한 상상력을 뽐낸 파블로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 후안 미로가 모두 스페인 출신이다.
▦ 스페인은 역사적으로 미술 강국이었다. 장엄미 가득한 기독교 성화를 남긴 엘 그레코와, 인간성을 다양하고 놀랍게 묘사한 프란시스코 고야, 현대의 위대한 건축가 가우디 등이 스페인의 미술사를 장식하고 있다.
그레코는 스페인에서 오래 활동하며 훗날 현대 화가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는 원래 그리스 크레타섬 출신이다. 그레코와 같은 방식으로 20세기의 피카소나 달리, 미로 등은 스페인을 떠나 유럽을 무대로 활동했다. 뛰어난 화가가 큰 무대로 나감으로써 세계미술사에 빛나는 이름을 남길 수 있었겠지만, 스페인으로서는 서운한 일이기도 하다.
▦ 세계 미술은 국제 비엔날레와 미술품을 전시ㆍ판매하는 견본시장을 통해 확장되고 있다. 대표적 견본시장이 시카고 아트페어, 프랑스 FIAC,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 독일 쾰른 아트페어, 스페인의 아르코 등이다. 이 중 아르코가 다음달 15~19일 마드리드에서 열린다.
26회를 맞는 아르코는 스페인 정부가 미술강국의 이미지를 높이고 현대미술을 육성하기 위해 지원하는 큰 행사다. 정부가 미술 견본시장을 지원하는 것도 이채롭지만, 한국이 이번 아르코 주빈국으로 참여하는 점이 특히 경사스럽다.
▦ 주빈국 한국에서는 미술가 90여명이 참가하고, 백남준 특별전 등을 개최한다. 또한 김기덕 특별전을 포함한 3개 영화제와 4개의 공연, 시낭송 등 풍성한 행사로 오늘의 한국문화를 알린다. 세계 미술시장의 확장과 나란히, 국내 미술시장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 미술시장은 아트페어와 경매 등을 통해 그 전년의 3배 이상 성장했다고 한다. 이 성장의 왕성한 기운을 국제무대로 옮겨가야 한다. 이번 아르코 주빈국 행사가 '미술 한류'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주목하게 된다.
박래부 논설위원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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