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달러대 국민소득이 더 이상 늘지 못하고 주춤거리거나 오히려 뒷걸음치는 국가를 일컬어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고 한다. 소득이 높아 가면서 분출되는 분배의 욕구를 시장이 담아내지 못할 때 이 함정에 빠지게 된다. 나라마다 과정은 다르지만 대표적인 남미국가의 경우 평등욕구와 차별적 시장경제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정치 리더십이 인기 영합성 선심정책에 쏠린 것이 그 원인이다.
홍익대 박원암(54)교수는 우리나라의 ‘중진국 함정’을 경계하는 대표적인 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외환위기를 맞은 지난 10년 동안 우리 경제는 많은 문제점만 노출시켰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은데 그 동안 분배도 악화되고 시장도 실종됐다. 우리나라라고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는 10년 전 외환위기를 “구체제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으로 규정하고 “그러나 신체제가 구체제에 비해 그동안 무엇을 잘했는지는 심각하게 따져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_신체제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구체제에 대한 반동입니다. 구체제를 고치자는 움직임이 IMF(국제통화기금)체제 초기에는 활발했습니다. 그러나 2년 여 지나 상시 구조조정체제로 가면서 공공과 노동은 미완의 개혁으로 마무리되고 현 정부의 10대 국정과제로 넘어왔습니다. 10대 과제는 출발부터 굉장히 애매모호하고 불안했습니다. 스스로 시장경제에 기초한다고 주장했지만 2004년 탄핵과 총선을 지나면서 현 집권층이 그 색깔을 분명히 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사를 규명하고 산업화의 부작용을 역설했는데 국민들이 자신들의 그런 방향을 지지한 것으로 알았던 것이지요. 사실 지난 3년간 시장경제를 말하는 사람들은 집권층으로부터 신자유주의자(시장만능주의자)로 몰렸습니다. 구체제보다 잘해보자고 시작한 신체제가 반 시장, 반 개혁으로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국민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못 받고, 그렇다고 사과도 하지않고 그저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과거 잘못이 분명 많습니다만 신체제 들어 과연 무엇이 나아졌는가를 따지는 국민들의 의문이 커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_복지부분에서는 많은 진전이 있지 않습니까.
“양극화 문제를 푸는 과정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습니다. 너무 정치적으로 접근을 하면서 이도 저도 기대만큼 진전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포플리즘이 돼 버리고 말았는데 양극화 문제야말로 경제적 접근인 일자리 창출로 해결해야 합니다.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억지로 복지문제로 풀어가려고 하면서 양극화 해결에 실패를 하고 있는 겁니다. 지역균형개발 문제도 시장경제와 거리를 두고 추진하면서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부작용만 키웠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너무 이념에 치우친 탓에 진짜 도움되는 방법을 찾는 노력에 소홀했다는 점입니다.”
_정치 논리가 경제적 어려움을 초래했다는 지적이신가요.
“경제가 경제논리로 접근하지 못하면서 초래된 어려움은 한둘 아닙니다만 가장 큰 문제는 성장기반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대외여건에 힘입어 수출이 그렇게 잘 됐는데도 내수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투자정책에 실패한 것인데 대표적인 실패가 저금리 정책입니다. 이는 사실 세계적인 현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가격만 올라가고 투자는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달리 나쁜 것만 드러난 겁니다. 원래 저금리 정책은 이를 통해 부동산가격이 올라가고, 부동산 시장 활성화가 건설투자와 설비투자를 살려 궁극적으로 국가 전체적으로 성장토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국의 3%대 지속 성장의 배경입니다만 우리 정부는 그것을 못했습니다. 그렇게 기대가 높았던 노사관계마저 더 악화됐습니다. 이 정부는 출범하기 전부터 노동자를 제일 잘 아는 정권이라고 말했지요. 잘 아니까 노사화합을 그 누구보다 잘 이룰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의욕을 갖고 설치한 노사정위원회가 제 기능을 못했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도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노조 참가율은 10%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대부분 근로자들은 노조와 관계가 없어요. 그런데도 전체적인 분위기에 휘둘리고 있는데 법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올해 우리 경제는 더 어려워집니다.”
_올해 우리나라의 대내외 여건은 전보다 더 나쁘지 않습니까.
“지금에 와서 정책노선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만 현 정부로서는 임기를 통틀어 대외 여건이 가장 나쁜 해가 될 것입니다. 북핵 변수도 있고 미국 경제의 연착륙은 불투명합니다. 이 때문에 달러화 약세기조 역시 계속될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 경제에는 메가톤급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국내에서는 대선이 있고 갈등은 곳곳에서 더 크게 불거질 것입니다. 특히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나 노사문제를 놓고 벌어질 갈등은 심각할 것으로 우려됩니다. 개헌문제까지 등장했는데 바로 이러한 갈등에 대한 걱정 때문에 미루자는 분위기가 있는 겁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상당부분이 정치적인 이유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걱정이 더 큽니다.”
_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선적으로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민주화가 많이 진전되고 계층간 갈등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특히 미흡했던 공공과 노동 부문에서의 개혁이 시장경제 전체에 가장 큰 개혁과제가 돼야 합니다. 성장동력을 회복하고 인적자원을 갖춰 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특히 인적자원을 확보하는 문제는 현 단계에서 시급히 고려돼야 합니다. 평준화가 과연 타당한지 보완하고 학교교육은 물론 직업교육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지금 실직한 사람이 많은데 훈련을 통해 이들이 새 직장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학교교육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인적자원을 위해서는 교육과 복지 노동 분야를 하나로 묶는 것도 방법입니다. 지난 대선에서도 3개 부처를 통합한다는 안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인적자원이란 이름으로 복지부분에 돈이 치우치고 있습니다. 수당으로 나가는 돈을 공교육과 직업 교육에 쏟고 일을 하도록 하는 복지지원체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_경제적인 면, 기업활동 측면으로 좁혀보면 어떻습니까.
“투자측면에서 혁신이 이루어지도록 환경을 정비해야 합니다. 정부의 투자지원은 혁신거점 등 지역 균형발전 쪽에 너무 치우쳐 있습니다. 동북아 경제중심 물류중심을 만든다고 했으나 지금 제대로 된 것이 없고 금융허브도 말만 있었지요. 정부가 하겠다고 한 것조차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경제환경을 정비하는 것은 선진화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산업정책차원에서 정부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시장경제 입장에서는 규제를 완화해야 합니다. 부작용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하지만 규제완화와 감세가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답입니다. 세금을 감면하면 작은 정부가 되고 기업에만 특혜를 주는 것이며 이 경우 복지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 현 정부의 논리입니다. 세금을 줄여 투자가 늘어나면 일자리가 창출돼 궁극적인 복지대책이 됩니다. 정부가 내놓은 비전 2030은 정부의 역할이 과도한 유럽형입니다. 이제 와서 우리나라가 유럽형을 따를 필요가 있습니까? 민간과 정부가 복지를 분담하는 다층적 복지 시스템으로 보완하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다음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_아직 이릅니다만 어떤 후보의 어떤 정책을 눈 여겨 봐야겠습니까.
“후보가 제시하는 비전과 지도력일 텐데 더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입니다. 지역 계층 나이별로 지지층은 이미 어느 정도 고착됐다고 봅니다. 올해 역시 후보들은 성장동력 회복을 얘기하고 일자리 창출을 말할 겁니다. 그러나 대선이 임박해지면 각자 차별화 되면서 정치적 색깔을 띤 시장경제를 얘기하리라 봅니다. 유권자들이 이념보다는 실용적 견해를 갖고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표를 행사해야 합니다. 결국 고정 지지층 보다는 부동층이 변수입니다. 지지층은 누가 뭐래도 지지하게 돼있습니다만 부동층이 과연 제 역할을 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절대적인 부동층은 현재 노무현대통령을 지지했다가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과연 누구를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인데 이번에는 잘 보고 속지 말아야 합니다. 당시 노무현 후보의 공약은 얼마나 화려했습니까. 동북아경제중심이 된다고 했고 7%성장을 이루겠다고 했습니다. 설마 하면서도 믿음을 준 것은 틀림없었는데 지금 어떻습니까. 동북아 불안만 높아지고 노사문제 여전하고 7% 성장은 커녕 4%에 그치고 있습니다. 제대로 따져보고 실천의지가 있는지, 방향은 맞는지 등을 다각도로 봐야 합니다."
●박원암은
박원암 홍익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후 한국은행에서 근무하다 미국 MIT대 국비유학생으로 공부했다. 그는 MIT에서 거시경제와 국제금융을 전공해 1984년 '경제안정과 투기에 관한 고찰'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애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을 거쳐 현재 홍익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있다.
한국일보는 조순 전 부총리의 추천으로 그에게 선진사회로 가는 길을 물었다. 그는 조 전 부총리가 주도하는 경제사상연구회의 멤버로 있으며 한국 선진화 포럼의 재정 금융 거시분과위원장으로 활동중이다.
▲약력
1953년 서울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MIT 경제학박사
1976 한국뵉?br>
1985 한국개발연구원
1994 홍익대 무역학과 교수
1998 비상경제대책위 자문위원
1999 국제금융센터 운영위원, 금융학회 부회장
2004 한국 계량학회 회장
▲주요저서
<우리나라 잠재성장률 추정과 전망> 우리나라>
<한국의 은행 100년 사> 한국의>
<국제금융론> 국제금융론>
<한국외환위기의 원인과 과제> 한국외환위기의>
<한국경제의 모형과 예측> 한국경제의>
이종재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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