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 여성 작가 메리 셸리가 소설 <프랑켄슈타인-현대의 프로메테우스> 를 쓴 것은 1818년이다. 시인 바이런,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화롯가에 둘러 앉아 두런두런 나누던 이야기를 정리해 출간했다고 한다. 여러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 탓인지 변형된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책으로 나왔고,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된 이후에는 서너 해 걸러 한 번씩 여러 차례 영화화했다. 프랑켄슈타인-현대의>
첫 영화는 1910년 발명왕 에디슨의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16분짜리 무성영화였고, 곧 이어 1916년에 조셉 스밀리 감독이 이 이야기를 장편영화로 만들었다. 1930~40년대를 풍미한 제임스 웨일 감독의 프랑켄슈타인 시리즈와 해머 필름에서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제작한 시리즈도 유명하다.
이밖에도 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사람들은 끊임없이 희극, 비극, 괴기, 공포 등 다양한 장르의 프랑켄슈타인을 생산해 냈다. 원본에 비교적 충실한 가장 최근의 영화는 케네스 브레너가 1994년에 만든 것이지만 그 후에도 드라큘라, 늑대인간, 프랑켄슈타인을 섞은 <반헬싱> (스티븐 소머즈 감독, 2004)이나 나노테크놀로지의 옷을 입힌 <서브젝트 투> (필립 치델 감독, 2006)처럼 이 이야기에 기대 만든 영화들이 끊이지 않는다. 서브젝트> 반헬싱>
그런 까닭에 드라큘라나 구미호 이야기처럼 때 되면 한 번씩 고개를 내미는 납량 괴기물 정도로 여겨지기 십상이지만 그 내용은 그리 간단치 않다.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는 과학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단단했던 19세기 초에 이미 과학이 인간의 존엄이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쉼 없이 달려 온 도전적인 과학에게 잠시 쉬어 가라는 충고를 던지고 있다. 메리 셸리의 남편인 시인 퍼시 셀리가 이 이야기를 하룻밤 화롯가의 수다라고 써 놓은 것에 홀려 이 이야기가 가진 중요한 의미를 놓쳐서는 안 된다.
이야기는 북극을 정복하러 나선 탐험선의 선장이 북극 바다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만나는 데서 시작한다. 의사였던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려는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이름도 없는 한 생명을 만들어낸다. 이 생명이 우리가 만화나 영화에서 마주치게 되는 예의 그 괴물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이 괴물을 아무런 대책 없이 방치한다. 버려진 괴물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사랑하는 사람 여럿을 죽게 만든다. 이에 격분한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복수를 위해 괴물을 쫓아 북극까지 왔다가 결국 괴물의 팔에 안겨 죽음을 맞는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이야기를 듣고 죽음을 지켜본 선장은 생명을 걸고 정복하려던 북극을 뒤로한 채 집으로 발길을 옮긴다.
선장이 온갖 역경을 뚫고 북극을 정복하려 했던 것은 당시에 여러 가지 모험들이 유행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17세기 이후 근대 서유럽은 모험을 통해 공간적 영토를 넓히고 지적 우위를 확보했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싸움이 일어났고 열세에 놓인 지역은 정복당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생명을 만들어낸 것도 지적인 영토를 넓히려는 정복을 향한 모험이었다. 그런데 그가 만든 생명이 괴물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것은 근대 서유럽이 몸을 실은 모험이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은유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괴물 이야기는 공간적 탐험과 과학적 탐구가 모두 정복을 통해 영역을 넓히려고 한다는 점에서 같은 시도이고, 그 결과로 사람들이 더 커다란 불행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정복을 향한 험한 길에는 싸움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싸움은 대부분 폭력에 의존한다. 호전성과 정복은 오랜 세월 동안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던 특성들이다. 자연을 정복하는 과학, 동양을 깔아뭉갠 서양은 말 그대로 여성 위에 군림하는 남성과 같은 위치에 있다. 근대 서유럽에서 역사는 남성의 논리를 따라 흘러왔다.
하지만 꼭 그러해야 했던 것은 아니다. 남성의 논리로 구성된 서양의 제국주의가 역사를 주도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에게 빛과 진리를 전하려는 노력이었겠지만 받는 입장에선 압제와 폭정, 그리고 착취의 연속이었을 수도 있다. 남성의 가부장적인 지위는 남성들에겐 사회를 조화롭게 유지하는 자연스런 제도의 산물이겠지만 여성들에겐 희생을 강요하는 굴레일 수도 있다. 서유럽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정복의 역사 이면에는 어두운 면이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
정복의 역사의 일부분인 과학도 이런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괴물로 대변되는 ‘남성적’ 과학의 산물은 추한 모습일 뿐만 아니라 그것에 의해 등장인물들 모두의 삶은 불행에 빠졌다. 실제로도 계속적으로 진행된 ‘남성적’ 과학의 결과로 등장한 원자폭탄이 우리를 핵전쟁의 공포 속에 밀어 넣었고 복제 인간의 가능성은 윤리적인 혼란에 빠뜨렸다. 200년 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지금 우리 곁에도 널려 있다.
‘남성적’ 과학에 문제가 있다면 해결책은 없는가? 메리 셀리는 그 해법도 프랑켄슈타인 이야기에 안배해 놓았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이야기를 듣고 난 선장은 북극 정복의 욕심을 버리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남성’적인 접근에 대한 경고인 동시에 ‘여성’적인 접근에 대한 권유이다.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밀어붙이기에만 열중했던 과학이 숨을 돌리고 지나온 길을 반성적으로 돌아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부드러움, 감성적, 소수에 대한 배려, 반성적 사고와 같이 ‘남성’적 과학에서 배제되어있던 ‘여성’적 특성들에 눈을 돌리고 그것을 과학하기와 접목해야 한다는 메리 셀리의 주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과학평론가ㆍ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주일우
금기를 넘어 지식을 추구하는 과학자
결과에 대한 믿음보단 불안이 더 많아
프랑켄슈타인 이야기의 원작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프로메테우스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에게서 배운 건축, 천문, 수학, 항해, 의학, 야금 등의 지식을 인간에게 전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올림푸스 산에서 인간들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도구인 불까지 빼돌려 인간들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가 전해 준 지식과 도구는 인간의 생존과 번영에 필수적인 것이지만 원래는 인간에게 없던 것, 혹은 금지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금기를 어기면서까지 지식을 추구하는 존재의 원형으로 꼽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파우스트, 프랑켄슈타인으로 이어지는 프로메테우스의 후손들은 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미친 과학자'로 다시 태어났다. '미친 과학자'는 신기한 물건이나 괴물, 혹은 무기를 만들어 낸다.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서 '미친 과학자'는 그것을 통제할 수 없게 되고 그와 그 주변은 나락과 같은 재앙에 빠져든다.
'미친 과학자'의 목록은 아주 길다. 과학저술가 김명진의 분석에 따르면 1930년대부터 1976년까지의 SF영화 중 60%가 과학기술과 과학자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1931년에서 1984년까지 개봉한 990여 편의 공포영화 중 과학(251편)이 초자연현상(241편), 마술(141편), 정신이상(136편)보다 더 많이 주인공을 위협한다. 작년에 출간되어 화제가 되었던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가장 영향력 있는 101 사람> 에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6위를 차지한 까닭도 이런 경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우리가 꼽을 수 있는 위대한 과학자들의 수가 적지 않고 그들의 헌신과 공헌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런데도 대중들이 즐기는 매체에 '미친 과학자'의 이미지가 압도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007 영화가 할리우드 영웅을 위한 악당을 설정하는 것과 비슷하게 상업주의가 개입한 혐의가 짙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일반인들이 과학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우려의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직도 과학은 우리가 안심하고 곁에 두어도 좋은 친구가 아닌 모양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