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공간, 그래서 지루한 공간, 더 이상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공간. 변수가 있긴 하다. 그 공간을 바라보는 눈, 심리적인 기제에 따라 작동하는 주관적인 눈.
갤러리인에서 열리고 있는 <둘러싸기-안과 밖> 전에 참여하고 있는 8명의 젊은 작가들은 공간을 재해석한다. 안이 밖이 되고 밖이 안이 되기도 하는 심리적인 공간, 그리하여 낯익은 것들을 낯설게 만드는 기이한 순간을 감춘 공간을 그림과 설치, 조각, 사진으로 펼쳐보이고 있다. 둘러싸기-안과>
송명진의 정원 그림은 잘라서 기우고 꿰맨 조각들로 이뤄져 있다. 나무와 풀은 실밥이 보이는 잔디 조각 틈새로 꾸역꾸역 삐져나오고, 땅은 뜯겨져 있고, 통통한 인삼 모양의 작은 인간 형상이 돌아다니는 장면은 익살을 가장한 채 잔인함을 즐긴다.
빛이 들어오는 창가나, 아직 햇빛이 남아있는 야외에서 밝게 타는 촛불이 등장하는 정보영의 그림은 트릭을 품고 있다. 환한 빛 속에서 촛불이 밝게 보일 리 없고, 주위를 밝히지 않고 그림자도 없이 홀로 밝게 탄다는 건 더군다나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을 구분하는 감각에 혼돈을 일으키는 그의 그림은 낯익은 공간을 초현실적으로 만든다.
시간의 순서와 공간의 차원을 뒤죽박죽 섞어 한 화면에 담은 정규리의 그림도 흥미롭다. 비행기가 뒤집힌 채 날아가는 땅바닥을 아기가 기어가고, 나무는 허공에 거꾸로 서있고, 계단을 밟지 않고 걸어가는 등 무중력 공간에 여러 사건이 전혀 연관 없이 떠도는 가운데 시계가 돌아간다. 현실이라면 감당하기 힘들 분열적인 상황을 작가는 어려움 없이 종합하고 있다.
민화의 책가도 형식에 재떨이, 커피잔, 구급약 상자 등 요즘 물건들을 그려넣은 김지혜의 그림이나, 전통 산수화에 현대인 유람객을 집어넣어 재구성한 임택의 디지털 사진은 온고이지신의 즐거운 실험이다. 파란 크레파스를 녹여서 대충 뭉친 덩어리를 선반을 따라 쭉 늘어놓아 마을 같고 숲 같은 풍경을 연출한 이강원, 하얗게 구운 도자판을 바느질로 꿰매어 벽에 부착한 신동원, 반듯한 사각형이 아니고 비죽비죽 모난 전시장을 동굴 삼아 검은 박쥐 모형을 천정에 매단 최성록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전시는 2월2일까지. (02)732-4677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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