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 / 조중걸 지음 / 프로네시스 발행ㆍ239쪽ㆍ1만1,000원
‘키치(Kitsch)’란 무엇인가. 문맥에 따라 “쓰레기 문화”로 무참히 짓밟히다가도, “전위 미학의 형식”인양 우쭐해 하기도 한다. 이 혼돈이 혹시 우리가 키치의 일상과 문화에 이미 포획됐음을 방증하는 것은 아닐까.
예술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조중걸 씨의 예술사 에세이 <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 는, 제목의 냉소처럼 차갑게 우리를 둘러싼 몽유도원의 도배지를 벗겨내고, 콘크리트의 삭막한 풍경을 응시하라고 충동한다. “대중을 시대착오로 이끌고 가는 허구적 환각”(키치) 속의 ‘병든 행복’보다 무의미와 부조리를 직시하는 ‘건강한 불행’을 권한다. 키치,>
신을 죽인 이성과 과학의 권능이 20세기 두 차례의 전쟁으로 곤두박질한 뒤 인간은 궁극의 의미를 물을 수 있는 어떤 절대자도 없이 ‘부조리’한 세상 속에 내던져졌다.
또 산업혁명이 노동의 ‘창조적 전체성’을 파편화하면서 소외와 절망으로 내몰린 인간은 오직 소비로써만 존재론적 결핍을 채우게 됐다. 이 맥락에서 탄생한 것이 ‘키치’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즉 키치는 “무의미를 유의미로 포장”하고 “기만적 행복”으로 대중을 사로잡아 스스로 독작적 삶의 양식이자 문화로 군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키치의 공세에 저항하고 키치 양식을 해체하기 위해 분투해온 예술의 역사를 더듬어간다. 구태의연함에 파괴로 ‘다다이즘’과 관습적 자아를 허물고 순수 감각의 세계를 구축하려 했던 ‘인상주의’, 내면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위선의 부르주아적 질서를 뒤흔든 ‘표현주의’, 그리고 허망한 우주를 버리고 ‘나 자신’으로 퇴각함으로써 근원적 삶의 가치를 복원하려 한 ‘모더니즘’, 현실 자체의 허구성을 응시하며 부유하는 의미 위에서 의미 자체를 유희한 ‘포스트 모더니즘’…. 문학과 미술 음악 행위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대 예술사의 궤적을, 저자는 고전주의 이래 경험-합리론과 실존주의, 생철학 등 세계 이해의 철학적 맥락 속에서 고찰한다.
이 묵직한 에세이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뚜렷하다. ‘키치’의 노래 너머에 존재하는 참 예술의 육성을 듣자는 것이다. 힘들고 불편해도 그 속에 삶의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힘들게 왜?’라고 따지고싶다면 당신은 이미 키치에 중독됐을 개연성이 높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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