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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사법 신뢰회복, 과거 청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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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사법 신뢰회복, 과거 청산에 달렸다

입력
2007.01.26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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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살인', 이처럼 수치스럽고 모순된 단어가 있을 수 있을까. 살인자를 찾아내 형벌을 가해야 할 정의의 심판자가 살인의 주체가 되었으니 말이다.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정의를 선언해야 할 사법부가 살인에 가담한 꼴이었으니 이 어찌 세계가 분노한 치욕이 아니었겠는가.

정치권력이 법을 억압하고 불법이 법의 이름으로 판치던 시대에 사법부마저 그 시녀 역할에 급급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사법사의 단면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단어이다.

● 치욕의 司法史 인혁당 사건

그 어두운 과거사를 판결로 청산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지난 23일 서울중앙지법은 소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재심에서 1975년 사형당한 우홍선 씨 등 8명에게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32년간 사법부를 짓누르던 정치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너무 성급한 사형판결과 사형집행에 비해 너무나 늦은 진실 규명이지만 영원히 뗄 수 없을 것 같았던 꼬리표를 떼어내려 애쓰는 사법부를 보면서 우리는 희망을 본다. 그 오욕의 역사 한가운데 있던 대법원이 이 사건의 최종판결을 내려야 하겠지만, 공판조서의 절대적 증명력을 부정하고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에 박수를 보낸다.

이 판결이 반국가사범이라는 누명으로 죽음을 당한 8명의 생명에 숨을 불어넣어 줄 수는 없지만 쌀알이 모래알 같았던 유가족의 숨죽였던 삶에 빛과 명예를 되돌려 주었고, 실종되었던 법치주의와 사법정의를 회복하려는 과거 청산의 청신호를 밝힌 것이다.

이 판결은 적법절차와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중요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인지 보여준 판결이다. 그러나 법원이 진정 군부권력에 길들여진 사법부라는 과거의 오점을 씻으려면 재심요건이라는 진실 규명의 높은 벽을 허물어야 한다.

이를 통해서 유신과 5공 군사정권 하의 오욕의 역사를 치유하여야 한다. 일각에서는 이번 재심판결을 과거사 파헤치기라는 현재의 정치상황과 연결시켜 폄하하거나 법원의 무분별한 재심 받아들이기를 경계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거의 확정판결이 뒤집어지면 법적 안정성이 해쳐질 것이고 사법부의 권위가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과거사 정리 및 진실 규명은 미래지향적 작업이다.

판결이 확정되었다고 해서 정의감정에 비추어 감내하기 어려운 정도의 명백한 오류를 그냥 덮어두는 것은 형사사법의 정의의 이념을 훼손하는 것이고 오히려 국민의 사법 불신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불법과 불의가 감춰진 법적 안정은 무덤 속의 평화라 하지 않던가.

검찰도 과거 청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소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기소권자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발뺌할 수 없다.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 때 혐의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기소할 수 없다고 사표로 맞선 검사들도 있지 않았던가.

● 철저한 과거사 정리로 사법정를

검사가 양심과 소신을 지킨 1차 인혁당 사건과 그렇지 않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처리결과는 검사가 바로 서면 정의가 바로 설 수 있음을 분명히 말해준다. 권력기관의 뜻에 따른 기소자판기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과거사 정리에 적극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무죄판결이 억울하게 죽은 자를 살려낼 수 없기에 더욱 가슴 아프고 유족의 슬픔이 큰 것이다. 인간의 존엄을 말살하는 사형이 폐지되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권력이 희생자와 그 유가족을 위로해줄 수 있는 남은 길은 금전 배상이 아니라 사형제 폐지의 결단과 남김없는 과거사 정리일 것이다.

하태훈ㆍ고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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