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삶과 문화] 한 택시기사의 소망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 한 택시기사의 소망

입력
2007.01.26 23:40
0 0

며칠 전 택시를 탔다. 때로 택시 안은 같은 사회에 몸 담고 사는 다른 사람들의 실상을 엿볼 수 있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우연히 말을 섞게 된 택시기사에겐 가족으로 부인과 딸 셋이 있고 아파트가 한 채, 그리고 자신이 모는 개인택시가 전 재산이라고 했다.

성당을 다니는 천주교 신자로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으며 늘 택시 안에만 있어야 하기 때문에 건강을 생각해서 새벽에는 동네 조기축구회원으로 운동장에 나가 한 시간씩 뛴다고도 했다. 우리나라의 건강한 서민의 표본처럼 보였다.

● 표본적 서민의 고단한 일생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택시기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뒤이어 나온 얘기. 첫째딸만 대학에 다닐 때는 그럭저럭 버틸 만했는데 둘째까지 대학에 간 뒤로는 살기가 아주 힘이 든다고 했다. 올해로 셋째딸이 고3이 되었는데 장래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는 것이다. 이야기하는 사이 그에게 전화가 왔다.

일은 할 만해 하고 묻자 저쪽에서는 즐겁다고 대답하는 듯했다. 걱정과 위로가 섞인 대화들이 오가는 걸 묵묵히 들었다. 전화를 끊은 택시기사가 묻지도 않았는데 둘째딸이라고 했다.

시청에서 대학생 아르바이트거리가 있어 두 딸이 모두 응시했단다. 그날 아침에 택시로 면접 보는 데까지 딸들을 태워다 주었는데 첫째만 되고 둘째는 떨어졌다고 한다. 둘째가 다시 찾아낸 아르바이트 자리가 백화점 식당인데 그날 처음 일하러 나간 모양이었다. 방학 중에는 말할 것도 없고 학기 중에도 두 딸은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양이었다.

지 용돈들 쓰는 거죠 뭐, 그랬다. 딸들이 착한 모양입니다, 했더니 기사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밝아졌다. 착하지요, 요즘 애들 같지 않고 착해요. 그건 하느님이 주신 복입니다, 그 덕으로 버티지요.

둘째가 대학생이 되고부터 빠듯했던 가계가 매달 적자라고 했다. 부인까지 나서서 일을 하는데도 그 적자를 메울 길이 없다고 했다. 단 몇 만원이라도 저축을 해야 살 맛이 나는데 이건 매달 적자인데다 이젠 어디 대출 받을 데도 없으니 한숨만 나옵니다, 했다.

작년에는 고민 끝에 살고 있는 30평 아파트를 월세를 놓고 같은 동네에 방 두 칸짜리 월세를 얻어 이사를 했더니 그 차액으로 둘째 학비를 댈 수 있더라고 했다. 방 한 칸에 딸 셋이 같이 지내니 불편이야 하겠지만 몇 년만 고생하면 되니까요, 그랬다.

그런데 내년이 걱정이라면서 자신의 벌이는 그대로인데 셋째가 또 대학생이 될 테니 답답하고 불안해서 요즘엔 새벽 4시까지 일하는 날이 많다고 했다. 매일 아침 택시를 끌고 나오면서 자기가 살던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저걸 팔아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고 있다고. 딸들 대학 졸업시키고 몇년 빚을 갚으면 다시 들어가서 살 수 있으려니 생각했는데 뜻대로 안될 모양입니다, 그랬다.

● 민생은 명분·이념이 아니다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사는 것은 무슨 대단한 이념이나 명분 때문은 아닐 것이다. 밥 벌어 먹고 자식 교육시키고 좀더 윤택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지나고 보면 한 사람의 평생이 될 것이다. 요즘 민생이 어렵다고 사방에서 아우성인데 그 민생이라는 것도 정치인의 발언에 등장하면 실감이 사라진 채 하나의 추상이 되어버린다.

택시 안에서의 한 이십분 동안 택시기사의 고단한 일생을 다 들었다. 택시비를 치르며 대학을 졸업한 저분의 딸들이 결혼자금은 각자가 해결할 수 있게 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남진우 명지대 교수ㆍ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