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헌팅턴은 국제정치의 원리로 '문명의 충돌'을 제시했지만, 이를 변형해 '정서의 충돌'이라고 명명하니 실체가 더 명료하게 설명되는 듯하다.
외교전문 잡지 '포린 어페어즈' 최근호에서 한 프랑스 학자는 미국과 유럽의 서방 세계가 '공포의 문화', 아랍 무슬림 세계가 '굴종의 문화', 그리고 아시아 지역이 '희망의 문화'를 키우며 세계가 정서적으로 충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뿌리 깊은 지배와 억압의 갈등관계, 급속한 세계화 과정이 부른 국제역학의 변동, 9ㆍ11 테러와 이라크 전쟁 등이 맞물리면서 세계 정치질서가 충돌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 서방세계는 빈발하는 국제 테러리즘에 대한 안보 공포, 경제적 인종적으로 밀려드는 아랍과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공포, 과거 지배적 지위 상실에 대한 불안감 등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회교 세계는 과격 극단 세력에 둘러싸여 증오의 문화를 발전시켜가고 있다. 이에 비해 양 세력 사이의 아시아는 방관자의 입장에서 세계화의 번영과 정치적 발언권을 강화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새 질서의 한 축이라는 것이다. 한중일 3개국 간 반목이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지만, 중국과 인도의 떠오르는 리더십에서 아시아에는 희망의 문화가 트고 있다고 본다.
■ 충분히 이해하기에는 이런 단순화가 지나치다는 느낌도 주지만, 미주알고주알 하는 일상과 아옹다옹하는 다툼 속에서 이런 유의 큰 틀의 시각을 접하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시시비비와 선후사리를 따지고 파고들기 보다는, 그저 자신과 주변을 성찰하는 시간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갈등과 충돌의 해결을 위한 우선적인 방안으로 그 학자가 제시하는 것은 무슬림에 대한 서방의 이해와 성찰이다. 다분히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처방인 것 같지만 사실 그런 바탕이 아니고는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
■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성찰 능력은 다중 지능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능력으로 간주된다. 자기 성찰지능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인식활동에 대한 관심이 많고, 자신의 감정과 능력에 대한 판단도 정확하다고 한다.
위인들의 공통점 하나는 자기인식활동이 많고 정확했다는 것이다. 대선을 11개월 앞두고 정치권이 용 틀임을 시작했다. 여당이 깨질 조짐에 대통령은 탈당을 거론한다. 실정으로 궁지에 몰린 대통령에게선 야당 주자에 대한 비난도 나온다. 정서의 충돌로 심한 몸살을 앓게 될 올 한해 성찰능력이 절실하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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