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신년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 정부와 여당의 실정을 맹비난했다. 노 대통령 집권 이후의 4년은 '잃어버린 세월'이며, 좌충우돌과 뒤죽박죽, 지리멸렬뿐이라고 지적했다.
정권이 무능하고 뻔뻔하다고도 했다. 특히 새해 들어 네 차례나 이뤄진 노 대통령의 각종 '연설'이 어설픈 진단과 억지논리, 짜깁기 통계와 무책임한 낙관론을 담았다고 통박했다. 아울러 개헌 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대선 불개입을 선언하고, 관리내각을 구성하라고 촉구했다.
그 동안의 여론과 국민 다수의 팽배한 불만을 반영한 내용이다. 유권자의 의사를 결집해 표출하는 정당의 원론적 기능만 생각한다면 야당 대표로서의 소임을 다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국정 실패의 일부 책임을 함께 질 수밖에 없는 제1야당이자, 수권 가능성이 큰 정당이라는 현재의 상황에서 비롯한 국민적 요구를 고려하면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우선 강 대표가 애써 동원한 자극적 어휘는, 국민들이 사실은 내용보다 더욱 못마땅해 하는 노 대통령의 말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독재 시절과 달리 지금은 어휘의 자극성은 발언의 가치를 끌어올리기는커녕 품위만 떨어뜨린다는 점을 간과했다. 제1야당 대표의 회견이라면 적어도 대변인의 일상 논평과는 구별되는 고품위 언어를 구사해야 했다.
말의 빈곤이 인식의 빈곤과 통할 수 있음은 '희망 대한민국' 프로젝트를 제시하고도, 그 내용을 채우지 못한 데서 금세 드러난다. 지난 4년 동안 절치부심했다면 '잃어버린 세월'을 탈색할 희망의 청사진을 그리고도 남았을 터인데도, 각계 인사가 참여하는 전략기구를 만들겠다는 게 고작이다.
그것도 실체가 불분명한 '수구 좌파'는 빼겠다니,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도구적 개념일 뿐이다. 이런 옹색하고, 알맹이 없는 프로젝트에서 희망을 읽어낼 국민이 얼마나 될까.
한나라당에 지금처럼 국민의 기대가 쏠린 적이 없지만 반사적 이득에 따른 거품도 많이 끼어 있다. 독자적 비전으로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면 순식간에 꺼질지도 모르는 거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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