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인수 사건 결심 공판에서 이뤄진 공소장 변경 내용의 법률적 해석을 두고 재판 당사자들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공소장 변경의 일차적 관심이었던 공소장 변경 과정에 대해선 법원이 공소장 변경을 제안하는 과정에서 검찰과의 의사소통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쪽으로 논란이 매듭지어지고 있다. 당초 공소장 변경 사실을 몰랐다고 했던 검찰도 지금은 변경 사실 자체는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이번 논란의 본질적인 측면이 공소장 변경의 과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변경된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에버랜드 사건 재판의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변경된 공소사실의 법률적 규정 여부에 따라 삼성그룹측에 유리해질 수 있느냐 아니면 검찰에 유리하냐가 갈라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법원의 입장에서도 이번 공소장 변경으로 지금까지의 쟁점에서 보다 폭 넓은 판단의 근거를 가질 수 있게 된다는 해석도 나온다. 법원 검찰 변호인측이 공소장 변경을 두고 첨예하게 신경전을 펴고 있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새로 추가된 공소사실은 1996년 에버랜드가 발행한 CB를 기존 주주들이 대거 실권(失權)했을 당시 허태학·박노빈 전·현 에버랜드 사장이 지배권 변동이 생길 수 있다는 위험성을 주주들에게 다시 알려주는 등 경영진으로서 지켰어야 할 구체적인 의무사항을 위반했다는 부분을 담고 있다.
이는 검찰이 결심 공판에서 두 사람의 배임 혐의를 보강하기 위해 의견서로 낭독한 내용이었다. 따라서 검찰은 공소장 변경이 불리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인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의견서 내용은 기존 공소장 내용에 포함된 것으로 불분명한 내용을 좀 더 명확히 한 것이었다”며 “공소장 변경이 그렇게(검사가 변경 여부를 확실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졌다고 해도 내용상 검찰이 불리해지는 것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도 일반적으로 공소장 변경은 법원이 어떤 식으로든 유죄를 선고하겠다는 심경을 내비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 많다.
그러나 다른 견해도 있다. 변경된 공소 사실은 검찰의 기존 공소내용과 차원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지금까지 CB의 발행, 실권과 제3자 인수 과정 전체가 이건희 회장 등 삼성 수뇌부와 전ㆍ현직 사장의 공모에 의한 결과라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의견서 내용은 허씨와 박씨 등 에버랜드 전ㆍ현직 사장의 실권에 따른 이사 고지의무 위반을 다룬 것으로 두 피고인의 배임 혐의를 입증하는 차원이다. 이사 고지의무 위반 사항이 이전의 공소사실에 새롭게 추가됐다는 것이다.
이 두 견해를 확장하면 재판부로서는 최소한 두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검찰의 주장대로 이사 고지의무 위반은 두 사람의 배임 혐의를 보강하는 차원이어서 CB의 발행 실권 인수 과정을 ‘공모’로 보는 공소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견해다. 이 경우 재판부로서는 공모에 대한 유무죄 판단이 가능할 뿐이다.
다른 하나는 재판부가 공모와 이사 고지위반 의무 부분을 분리해 볼 수 있다는 견해다. 이 경우 CB 발행과 실권과정에서 주주들과 공모 혐의는 제대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보고 두 피고인이 대량실권이 발생한 상태에서 주주 손실 발생 가능성에 대한 보고 의무를 다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만 유죄를 선고하는 게 가능해진다.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전자의 경우 이 회장 등 삼성 수뇌부와 비서실 관계자의 조사가 불가피해지만 후자의 경우 이들에 대한 면책선고나 다름없다. CB 발행과 실권이 합법적이었다면 검찰이 이 회장 등을 소환할 명분이 약해진다. 검찰에겐 최악의 시나리오이지만 삼성측엔 최선의 희망 사항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때문에 검찰은 후자의 시나리오에 대해 “삼성의 아전인수식 해석에 가깝다”고 발끈하고 있다. 법원이 이런 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공소장 변경을 요청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항소심에서 실제로 공모 부분이 무죄가 선고되면 검찰로서는 이 회장 소환을 하지 못하게 되는 책임은 법원에 있다는 점을 내세울 수 있다. 실제로 검찰은 “검사는 법정에서 공소장 변경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강조함으로써 법원이 고지의무 위반 부분을 따로 떼내 판단할 수 있는 빌미를 검찰이 제공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수사팀 관계자는 “공소장 변경은 배임 혐의와 관련한 내용을 좀 더 구체화했다는 의미 이상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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