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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길 위의 이야기]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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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길 위의 이야기] 자존심

입력
2007.01.26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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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5,000원을 타서 담배를 사러 간다. 예전엔 두 갑을 사면 1,000원이 남았는데, 그래서 그 1,000원으로 캔커피나 자판기 커피 한 잔 뽑아 마시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요즈음은 그럴 수가 없다.

5,000원으로 담배 두 갑 사면 끝이다. 일정한 소득이 없는 나로서는, 그래서 아내에게 담뱃값을 받아쓰는 나로서는, 서운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2,500원 담배 한 갑에 세금이 1,100원. 아내에게 받은 돈으로 나는 성실하게 납세의 의무를 다한다. 내가 낸 세금으로 보건복지부에선 출산장려정책을 세우고, 그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한다. 담배 피우면 일찍 죽는다고, 건강 해친다고 잔뜩 겁을 주면서, 다른 한편으론 그 담배를 팔아 출산장려정책을 세우는 것은, 마치 흡연자들로 하여금 어떤 부당한 식민통치를 당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갖게 한다.

억울하면 끊으라고 하지만, 그래서 단박에 지배계급으로 넘어오라 하지만, 누군가 내 기호에 관여하는 것이, 그것도 치사하게 돈으로 좌지우지하려 것이, 연약한 자존심에 자꾸 생채기를 내는 것만 같아, 차마 그럴 수가 없다.

흡연자들의 자존심을 살피지 않는 정책 입안자들이 그저 야속한 까닭이다. 당신이라면, 너 가난하니까 이제 커피도 마시지마, 하면 기분 좋겠소? 내 기분이 딱 그 꼴이다.

소설가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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