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동안 담배를 피워온 사람이 폐암에 걸렸다. 흡연과 폐암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담배를 피운 사람 탓이 클까, 그에게 담배를 판 사람의 탓이 클까.
1940년생인 A씨는 99년 폐암진단을 받았다. A씨는 흡연 경력을 표현하는 단위인 갑년으로 40갑년이었다. 하루 한 갑씩 40년, 하루 두 갑씩 20년 동안 피웠다는 것을 뜻한다. 술은 잘 마시지 않았고 과일노점상, 식당 등을 운영해 암을 일으킬 만한 환경과도 가깝지 않았다. A씨는 2004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43년생 B씨 역시 ‘골초’였다. 99년 폐암 진단을 받을 당시 36갑년이었다. 외항선 기관사로 주로 바다 위에서 생활하면서 국산 담배만을 피웠다. B씨도 99년 사망했다.
A씨와 B씨는 죽기 전인 99년 “폐암이 걸린 것은 담배를 피운 나보다 담배를 판 회사 탓이 크다”며 담배회사 KT&G(옛 담배인삼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상황이 비슷한 5명과 그 가족들 29명과 함께였다. “담배가 폐암을 일으킨 것이 확실하고, KT&G는 담배의 유해성을 알면서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팔았으니 책임을 져라”는 주장이었다.
그 후 7년 4개월이 지난 2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3부(부장 조경란)는 이 소송의 1심 판결을 내려 “담배를 판 회사에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폐암은 흡연 외에 유전적 요인, 음주 경력, 병력, 식습관 등 다양한 원인으로 발병할 수 있다”며 “A씨 등이 폐암에 걸린 것이 반드시 흡연 때문이라고 볼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KT&G는 담배가 건강에 안 좋다는 의학계 연구 결과가 나왔을 때부터 담배갑에 경고 문구를 넣었으므로 유해성을 충분히 알렸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담배는 한 번 접하면 계속 접하게 되는 의존성이 있지만 마약처럼 강하지 않아 흡연은 결국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 결과만을 두고 볼 때 일단 담배회사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담배회사가 담배의 유해성에 대해 완전히 면죄부를 받은 것은 아니다.
이번 판결은 재판부가 담배 회사에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지 않은 이유로 원고들의 흡연과 폐암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을 제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폐암이 흡연 때문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이번 원고들과는 달리 다른 사건에서 흡연과 폐암 사이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드러나면 담배회사의 손해배상의 책임을 인정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다.
원고 측은 선고 직후 “매우 실망스럽다”며 즉시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원고와 KT&G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만큼 이 소송은 결국 대법원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흡연자가 폐암에 걸린 것이 담배를 피운 사람 탓인지, 담배를 판 회사 탓인지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기까지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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