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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결혼 韓·中부부 '찢어진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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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결혼 韓·中부부 '찢어진 행복'

입력
2007.01.26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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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로 사랑하게 해주세요.”

퀵서비스 배달원 이모(43)씨의 절규다. 초등학생 두 딸을 생각하면 열심히 일해야 하지만 그는 요즘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중국인 아내 판모(30)씨가 23일 준엄한 법의 심판에 따라 중국으로 쫓겨갔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부인과 생이별한 사연은 지난해 봄 시작됐다. 이혼한 뒤 두 딸을 키우던 이씨는 국제결혼 브로커 정모씨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들었다. 한국 국적을 얻어 취업을 하려는 판씨와 위장결혼을 하면 30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지난해 5월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판씨와 첫 만남을 가졌을 때만해도 특이한 돈벌이에 불과했다. 늘 부족한 생활비와 커가는 딸의 교육비라 여기고 눈을 딱 감았다.

막상 한국에 돌아오니 덜컥 겁이 났다. 위장결혼이 발각돼 처벌을 받았다는 얘기, 아이들의 눈에 비칠 자신의 모습이 자꾸 걸렸다. 마음을 먹고 브로커 정씨에게 결혼을 취소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가능하지만 중국에 오간 경비를 모두 물어내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이씨에겐 큰 돈인 터라 지난해 6월 8일 결혼식도 없이 얼굴만 한번 봤을 뿐인 판씨를 배우자로 신고했다.

2개월 뒤 입국한 판씨는 그 길로 인천국제공항 부근의 식당에 취직해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역시 이혼녀였던 판씨는 목돈을 마련할 욕심으로 아들까지 중국에 남겨두고 혈혈단신 왔다.

자신을 도와준 남자에게 성의표시는 해야 했다. 가끔 쉬는 날이면 판씨는 서류상의 남편인 이씨를 찾아가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딱히 갈 곳도 없었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았지만 정은 시나브로 싹이 텄다. 가짜 부인이 자신의 딸을 보살펴주고 부모에게도 예를 갖춰주니 꿈인가 싶었다.

인사치레 만남은 차츰 애정어린 데이트로 변해갔다. 둘의 감정은 서먹함에서 호감으로, 다시 사랑으로 변해갔고 만날 수 있는 주말만 기다리게 됐다. 두 딸과 함께 놀이동산을 찾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가 하면 어느새 둘의 손가락엔 평생의 반려자를 상징하는 금반지도 끼워졌다.

진심을 통해 얻게 된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이씨의 집에 단속반이 들이닥쳤고 위장결혼은 탄로가 났다. 판씨는 주거가 일정치 않다는 이유로 구치소에 수감돼 재판을 받아야 했다.

법원은 11일 실제 결혼할 의사가 없으면서 혼인신고를 한 혐의(공전자기록 등 부실기재 등)로 기소된 이씨와 판씨에게 각각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공전자(公電子) 기록은 전산상에 작성한 공문서를 말한다.

판씨는 23일 중국으로 추방됐다.

이씨는 잘못을 인정하지만 눈에 아른거리는 아내의 얼굴은 지울 수 없다. “면회 때 눈물을 흘리던 아내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요. 가능하면 정식 절차를 밟아 아내는 물론 그 아들까지 한국으로 데려와 같이 살고 싶은데….” 한숨만 늘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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