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처음 본 낯선 사람과 프리허그(free hug)를 하듯 짝짓기를 한다. 대형 마트에서도 부부나 연인이 떨어지면 큰 일 날새라 손끝이나마 접촉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최근 인기를 끌고있는 하나은행의 둘이하나카드 CF장면이다. 광고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커플이 함께 하면 (할인혜택 등) 효과는 배가된다는 것이다.
화장품도 다르지않다. 커플화장품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대표적인 여성화장품 브랜드 라네즈가 남성화장품 라네즈 옴므를 새로 내놓고 커플 화장품 개념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남성 글루밍 시장이 확대되면서 남성 전용 화장품 브랜드가 속속 생겨나는 마당에 커플화장품이라니 시대에 역행하는 것 아니냐고? 모르는 말씀, 커플이면 더 좋은 이유는 있다.
수입 화장품 브랜드에서 ‘옴므’나 ‘포 맨’을 붙여서 여성브랜드에 남성용을 얹어가는 경우는 일반화한지 오래다. 수입 화장품 자체가 기본적으로 럭셔리 브랜드의 명성에 기대어 시장을 확보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화장품 문화는 좀 다르다. 60년대 나온 국내 첫 남성용 화장품 ABC포마드부터 최근의 미래파, 오디세이, 보닌, 꽃을 든 남자에 이르기까지 남성을 위한 전용 브랜드를 내놓는 것이 당연시됐다. 남성을 위한 화장품은 따로 있다는 것이 화장품업계의 한결같은 주장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아모레퍼시픽의 최영호 라네즈 브랜드매니저는 “수분 컨셉트의 인기 브랜드로 확고한 입지를 갖춘 라네즈가 라네즈 옴므를 통해 젊고 세련된 20대 남녀를 망라하는 토탈 브랜드로 거듭난다”고 밝혔다. 메인 광고모델로는 미래파와 헤어브랜드 미장센 모델로 활동했던 조인성을 기용했다. 이 회사 마케팅실 김효정씨는 “일종의 커플화장품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연인과 내가 함께 즐기는’ 브랜드로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취지”라고 덧붙인다.
아모레퍼시픽이 지난해 국내 남성 630명(서울/수도권 거주 만 15세 이상 49세 이하)을 대상으로 실시한 남성미용실태조사에 따르면 남성 화장품의 70%이상은 여성이 구매할 정도로 대리구매 비중이 높다. 남성 글루밍에 대한 관심이 높다지만 실제 구매는 여성이 한다는 이야기다. 대답은 여기서 나온다. 라네즈를 사용하는 여성이라면 연인이나 남편을 위해서 라네즈 옴므를 구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복안. 기존 미래파나 오디세이가 다소 나이든 느낌인 데 반해 라네즈는 훨씬 젊은 이미지라는 점도 감안됐다.
물론 여성 브랜드의 남성영역을 아우르는 시도가 이번이 첫 사례는 아니다. 커플화장품이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봄 LG생활건강이 오휘 포 맨을 내놓았고, 코리아나도 녹두 옴므를 출시했다. 한국화장품은 A3F[on]옴므를 내놓고 있다. LG생활건강의 백화점 전용 브랜드 오휘의 경우 ‘네오필’이라는 이름의 남성라인을 같이 내세웠으나 오휘 포 맨으로 이름을 바꾼 데는 이유가 있다. 이 회사 마케팅실 성유진씨는 “대표적인 남성전용 브랜드로 보닌이 있지만, 화장품 전문점을 통해 유통되는 시판 브랜드이고, 백화점에서 화장품을 사는 중상층 고객을 포섭하려면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오휘의 이름값에 얹혀가는 것이 필요했다”고 밝힌다.
신세대 남성들이 기존 브랜드의 강한 ‘남성취향(?)’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커플 컨셉의 확산에 기여한다는 분석도 있다. 녹두 옴므를 내놓고있는 코리아나 홍보실 김자영씨는 “젊은 층일수록 피부관리에 민감한 편이라 알코올 함량이 높고 향이 강한 남성전용 브랜드를 기피한다. 이들은 존슨즈 베이비류의 가볍고 향이 연한 제품이나 여성용 제품을 같이 쓰는 경우도 꽤 된다”고 말한다. 녹두 옴므는 청정보습을 중시하는 브랜드 이미지에 맞춰 알코올함량을 남성전용 브랜드에 비해 1/3수준으로 낮춰 순하게 만들었다.
브랜드 하나로 여성과 남성을 아우르는 커플전략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커플티를 입는 것 같은 잔재미를 줄 지 모르겠다. 쇼핑의 편의를 도모할 수도 있을 테고. 무엇보다 모모한 기념일의 선물고민을 덜어줄 터. 마침 라네즈는 발렌타인 데이를 앞두고 커플화장품 선물세트를 마련하는 이벤트도 구상중이라고 한다. 커플반지 커플속옷에 이어 커플화장품이 발렌타인의 지칠 줄 모르는 상혼을 달래줄 일만 남았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