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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검은 시대'의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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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검은 시대'의 청산

입력
2007.01.26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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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 도쿄의 우에노 공원에서 까마귀가 비둘기를 잡아먹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광장을 가득 메운 비둘기들이 구구구, 구구구 떠들며 먹이를 찾아 먹고 있는데, 갑자기 까마귀 한 마리가 날라오더니 비둘기 한 마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까마귀는 그 비둘기를 마구 쪼아대면서 나무 뒤편으로 끌고 갔다.

나는 까마귀에 놀란 것 이상으로 비둘기들에게 놀랐다. 수천, 수만 마리의 비둘기들은 까마귀 한 마리의 공격에 무저항으로 일관했다. 바로 옆에서 동료가 공격받는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조용했다. 그 가엾은 비둘기는 동료들의 철저한 외면 속에 끌려갔다. 화창한 햇살 아래 비둘기들은 평화롭기 그지없고, 죽은 놈의 몸에서 찢겨나온 깃털이 여기저기 흩날렸다.

● 32년이 걸린 인혁당 사건 무죄판결

그 비겁한 비둘기떼를 욕할 사이도 없이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아무일도 없다는 듯 구구구, 구구구 떠들며 먹이를 찾아 먹는 비둘기떼는 바로 군사독재 시절 우리의 모습이었다. 옆에서 누군가 잡혀가고 고문당하고 죽어가도 우리는 모르는 척 자신의 밥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있지 않았던가.

서울중앙지법은 23일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 없는 법정에서 유족들은 눈물을 쏟았다. 북한의 지령을 받고 인혁당을 재건하여 내란 등을 음모한 혐의로 1975년 4월8일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던 8명의 피고인들은 다음날 사형이 집행되어 세상을 떠났다. 이날의 판결은 법원 스스로 32년 전의 '사법살인'을 인정한 참담한 고해성사였다.

1970년대를 고통없이 뒤돌아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72년 10월 유신헌법이 선포되고, 73년부터 대학생들의 유신반대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긴급조치가 잇달아 발표됐다. 정부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을 범죄단체로 규정하고 그 배후로 인혁당재건위를 지목했다. 인혁당 사건으로 체포된 사람들은 긴급조치에 의해 설치된 비상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았다.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김용원 도예종 서도원 송상진 여정남 우홍선 이수병 허재완씨 8명은 대법원에 항고했지만 대법원에서도 사형선고를 받았다. 선고가 내려진지 18시간 만인 다음날 새벽 사형이 집행됐다. 4월9일 아침 9시 남편을 면회하러 서대문형무소에 갔던 아내들은 남편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형이 집행된 시신이 가족에게 넘겨졌지만 일부만 시신을 볼 수 있었고, 나머지는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직접 화장장으로 싣고가서 화장을 해버렸다. 가족들이 1년이나 면회도 못하는 사이에 고문 등으로 훼손된 몸을 차마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이다. 흉흉한 소문이 온나라에 안개처럼 자욱했던 74년 여름, 인혁당 사건은 공포와 절망으로 사람들을 얼어붙게 했다.

불의한 국가권력과 사법부가 작당하여 무고한 국민들을 죽였던 사건이 무죄판결을 얻어내기까지 무려 32년이 흘렀다. 93년 문민정부가 집권하고도 14년이 걸렸다. 민주정부가 들어섰지만 우리가 '검은 시대'를 벗어나기에는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 불의가 덮여져서는 안된다

동독의 시인이며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불의만 있고 공분은 없는 시대'를 '검은 시대'라고 불렀다. 우리는 과연 '검은 시대'에서 벗어났는가. 오늘 우리 사회에는 인혁당 사건의 '국가살인'에 대해 공분이 끓어오르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8명의 원혼, 그 유족들과 같이 울고 있는가. 원통하게 가장을 잃고 '빨갱이 가족'으로 살아온 유족들의 고통을 위로해주고 있는가.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있을 이 기막힌 사건에 대해서 같이 울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에노공원의 비둘기떼와 다름이 없다. "그 시대에는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불의를 덮어서는 안된다. 궤변으로 그 시대를 칭송하거나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용서해서는 안된다. 불의만 있고 공분은 없는 사회처럼 무서운 사회는 없다. '검은 시대'를 확실하게 청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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