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남주(36)와 인터뷰 시간을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CF촬영 때문이라고 했다. 만나자마자 물었다. 현재 방송 중인 CF가 몇 개냐고. 그가 잠시 머뭇거리자 매니저가 “다섯 개”라고 대신 답변을 했다. 휘둥그레지는 김남주의 눈동자. “우와, 제가 정말 그렇게나 많이 해요?” 아랑곳 않고 매니저가 한 술 더 뜬다. “(출연) 진행 중인 게 3개 더 있는데요.”
‘CF퀸’ 김남주가 1991년 발생한 이형호군 유괴사건을 토대로 한 영화 <그 놈 목소리> 를 통해 배우로 돌아왔다. 2001년 TV 드라마 <그 여자네 집> 이후 6년 만이다. 오랜 공백. 그러나 그의 복귀가 새삼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 TV만 켜면, 어떤 채널을 선택하든 프로그램 사이사이 책갈피처럼 등장하는 그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그>
CF를 통해 그는 견고한 성채 같은 이미지를 쌓았다. 명품으로 몸을 두르고 ‘팰리스’ 꼬리표가 붙는 고급 아파트에 살듯한 귀부인의 모습. 김남주는 이 시대 뭇 여성이 바라 마지않는 물질적 행복의 상징이다. <그 놈 목소리> 에서 맡은 역할은 잘 나가는 9시 뉴스 앵커인 한경배(설경구)의 아내 오지선. CF 이미지에 가깝다. 그러나 그는 아이 잃은 비련의 엄마로, 행복으로 가득한 CF 속 모습을 철저히 파괴한다. 그>
1993년 데뷔 이후 영화 출연은 <아이 러브 유> (2001)에 이어 이번이 고작 두 번째. “연기에 자신이 없으니 CF 속으로 숨은 것 아니냐”는 비아냥은 당연해보인다. 그는 “겁 많은 성격 때문에 잘해 낼 수 있는 작품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다 보니…”라고 해명한다. 아이>
<그 놈 목소리> 는 그 자신이 딸을 가진 엄마이기에 자신감이 있었다. “처음 시나리오 읽었을 땐 (출연 여부가) 반반”이었으나 “아동범죄는 공소시효가 있을 수 없다는 내용이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한다. “엄마로서 반드시 출연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은 거죠.” 그>
그러나 촬영기간 4개월 내내 정신적으로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장면 하나하나가 가슴을 저몄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나리오도 출연 제의 받을 때를 포함해 딱 두 번 읽었다. “실제 부모에게 누가 되지 않는 연기를 하려 최선을 다했어요. 아이 잃은 엄마의 감정을 유지하는 게 가장 힘들었고요.”
그는 자칫 흉내로 그칠 수 있는 연기를 엄마이기에 실감나게 해냈다고 자부한다. 영화 속 지선이 장롱에서 꺼낸 현금 다발을 목사에게 안겨주며 매달리듯 절규하는 “내 새끼 제발 살려주세요”라는 대사는 원래 시나리오엔 없었다. 그가 “촬영 기간 내내 수 천번 수 만번 마음속으로 외쳤던 말”로 자연스럽게 극중에 녹아 들었다.
영화의 비극적 결말과 달리 현실의 김남주는 지금 인생의 절정에 있다. “결혼하기 참 잘 했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든다. 남편 김승우와 돌배기 딸 란희는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여자 배우로서는 핸디캡인 아줌마 딱지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일과 가정을 택하라면 전 가정이 우선입니다. 여배우만을 고집하기엔 인간 김남주로서 굉장히 행복한 시기거든요.”
그러나 <그 놈 목소리> 로 재개한 연기에 대한 욕심도 감추지 않는다. 그는 “빌딩 같은 집에서 살 것 같고, 늘 스파게티만 먹을 것 같고, 큰 냉장고 옆에만 서있을 듯한 김남주의 ‘달나라 사람’ 이미지를 깨고 싶다”고 했다. 대신 “털털한데다 건망증 심하고 때론 푼수기 다분한” 실제 자신의 맨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 “배우로서 그 동안 직무유기를 해왔어요. 이젠 편한 연기를 자주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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