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밤 전국에 TV로 생중계된 노무현 대통령 신년특별연설 시청률은 22%가 넘었다. 언론의 왜곡을 걱정할 필요 없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오해와 불신을 털어내기에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연설내용 때문만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생생한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며 프롬프터(영상원고)도 보지않고 즉석 연설이라는 모험을 했지만 내내 허둥지둥하는 모습으로 답답함을 남겼다.
노 대통령은 주제별 연설시간 배분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아, 시간 때문에 안되겠네요. 넘어갑시다"란 말을 1시간 동안 무려 20번이나 했다. 노 대통령은 또 당황한 표정으로 "이 부분은 시간이 없어 말씀드릴 수 없다"며 몇 번이나 급하게 원고를 넘겼다. 노 대통령은 "도올 김용옥 선생이 부럽다. 나도 10시간만 주면…"이라며 짧은 시간을 원망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거의 방송사고다. 많은 시청자들의 느낌은 "그저 산만했다"는 것이다.
당초 200자 원고지 216매 분량의 연설원고를 들고, 생방송을 하겠다며 연단에 오른 것부터가 무리였다. 그것은 2시간 동안 그냥 읽기에도 벅찬 양이다. 굳이 생방송을 하겠다면 주어진 시간 안에 요점을 전하기 위해 리허설이라도 해야 했을 텐데 노 대통령이 그랬다는 말은 없다. 본인의 유창한 화술만 믿고 바로 카메라 앞에 선 것이다.
TV 공중파를 통해 새해 국정방향을 국민에게 보고하는 대통령의 연설이 이럴 수는 없다. 이렇게 두서 없는 대국민 연설을 본 적도 없다. 이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국민이 지켜보는 그 자리를 얼마나 가볍게 여겨서 그랬을까 생각하면 입맛이 쓰다. 만약 노 대통령이 4년 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다면 이런 연설을 할 수 있었을까.
노 대통령이 즉석연설을 고집했다지만, 이를 만류하거나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한 참모들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아무래도 노 대통령의 신년연설은 약 보다는 독이 된 것 같다.
이동국 정치부 차장대우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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