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 없을 때까지만 문학을 사랑하자
네가 힘들어하는 거 안다. 소설쓰기를 그만두고 싶다는 네 심정 충분히 공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에게 계속, 글 쓰자고 꼬드길 수도 없으니 나도 곤혹스럽다. 나조차 스스로를 설득할 수 없는데, 어찌 너를 설복시키겠니.
지난 가을 버스를 타고 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문학이 나를 불행하게 내버려둔다면 내가 굳이 문학에 목멜 필요가 뭐 있담.” 그렇게 생각하니 5분간 정말 행복하더라. 짝사랑하던 남자의 결혼식장에서 돌아 나선 여자처럼 쓸쓸하지만 가뿐했다. 버스 차창 밖으로 한강이 훌훌 지나가더라. 그냥 문학 없이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도 괜찮지 않을까.
문학 때문에 다른 삶의 가능성을 다 놓쳐버린다면, 몸 안에 자리 잡은 악성세포 때문에 생의 모든 활력을 잃어버린다면 그 세포를 조속히 제거하는 것이 옳을지도. 그래, 우리는 글을 안 쓰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몰라. 나같이 투덜대는 사람보다 이 일이 정말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달게 자신을 바치는 사람이 문학을 해야겠지. 매일매일 자가 발전기를 돌려 겨우겨우 몇 줄씩 쓰는 나 같은 인간이 문학을 해서는 안돼. 제 몸에 채찍질하며 연자방아를 돌리는 당나귀 꼴이잖아.
그런데 정은아, 우리를 괴롭히는 건, 문학일까. 인정 받지 못한다는 괴로움일까. 누가 우리에게 글 쓰라고 한 건 아니잖아? 예전에 나는 글 쓰는 게 참 재미있었다. 사는 게 고달파도 몇 시간 글을 쓰면 속이 후련했다. 그런데 덜컥 등단을 했고, 등단 이후로는 글 쓰는 게 정말 곤혹스러웠다. 이제 작가가 되었으니 멋지게 써야 하는데, 왜 내 글은 이 모양일까. 돌이켜 보면 문제는 등단만 하면 작가가 된다고 착각했던 내게 있었다. 철없고 겁 없던 나는 등단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걸 몰랐다. 단번에 대작을 써내려는 욕심을 버리고 찬찬히 노력했어야만 했다.
맨 처음 너를 보았을 때가 떠오른다. 우리는 신인답게 의기양양했어. 기억 나? 그 후 삼년동안 너나 나나 참 힘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래, 혹여 네가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아도 나는 네가 포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았다며 축하해줄 거야. 문학이 너를 끝끝내 괴롭힐 것 같으면 버리렴. 하지만 끝끝내 버리지 못하겠으면? 지금 끝내면 난 죽을 때까지 미련이 참 많이 남을 것 같다. 문학, 그 더럽고 질긴 사랑에 지금은 최선을 다해주는 것이 예의일 듯싶다. 그게 짝사랑일지라도 말이야.
2006년 12월 14일 나정
● 김다은의 우체통
아픈 만큼 강해졌을 2003 신춘문예‘두 샛별’
서로 만난 적도 없다. 본 적도 없다. 그런데 매번 사람들은 두 이름을 같이 거론했다. 이정은(한국일보)과 김나정(동아일보)이 2003년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을 때다. 비평가들은 성격이 판이한 두 소설을 ‘세트‘로 묶어 관심을 보였고, 문예지들도 ‘세트’로 청탁을 했다. 미지의 비교 대상에게 호기심이 생겨날 수밖에.
한 출판사의 연말 파티에서 첫 대면(필자도 그 자리에!)을 하자마자 친구가 됐다. 그 후 그들은, 쌍둥이처럼, 같은 증상에 시달렸다. 작품에 대한 강박증! 비례한 무기력증! 지금도 그 늪에서 완전히 빠져 나온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괴로우면 문학을 버리라’고 공개 편지를 쓸 정도니 발신인도 수신인도 충분히 강해진 듯!
소설가ㆍ추계예대 교수 김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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