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재건위 사건 무죄 선고는 ‘사법부 과거사 정리’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다. 2005년 9월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후 과거 확정판결에 대한 재심이 이뤄져 무죄가 선고된 것은 처음이다. 이 대법원장은 취임사를 통해 “과거 사법부의 잘못을 깊이 반성한다”고 했다. 이번 재심 판결로 무고한 사람들이 사형을 당했다는 점이 확인돼 사형제 존폐 논란에 불을 지필 것으로 예상된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에게 무죄가 선고되기까지는 32년이라는 긴 세월이 말해주듯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암울했던 현대사 속에서 숨죽여 지내던 유족들은 2002년 9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고문에 의해 조작됐다”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가 있고서야 법원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검찰은 “의문사위의 결정은 재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고 법원은 과거 기록을 살피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며 심리를 미뤘다. 대법원 확정판결을 뒤집을 경우 자칫 사법 불신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23일 판결은 과거사 정리에 나선 사법부가 ‘법적 안정성’보다 ‘사법 정의’를 택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과거 잘못된 판결을 솔직히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사법 신뢰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법원의 고민이 엿보인다.
판결은 번복됐지만 이미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람들의 목숨을 되돌릴 수 없다. 김형태 변호사는 “회복 불가능이라는 사형제의 한계가 다시 한번 여실히 드러났다”며 “이번 판결은 ‘과연 사형제가 정당하냐’는 법률적 의미를 던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른 재심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법원에는 간첩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강희철씨 사건,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전파했다가 계엄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아람회’ 사건, 위장간첩 ‘이수근 사건’에 연루돼 21년간 복역한 이수근씨의 처조카 배경옥씨 사건,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사건 등에 대한 재심이 진행 중이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맡았던 민복기 대법원장 등 당시 대법관들이 유족들에 대한 사과 등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과거 법원이 잘못 판결한 것에 대해 유가족과 국민에게 죄송할 따름”이라며 “과거 사법부의 잘못을 바로 잡는 게 지금 사법부의 최소한의 책무이자 자기 반성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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