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샘물이요, 인생의 디딤돌과 같다.”
일가(一家)를 이룬 학자의 고백이 아니다. 하루 세끼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누울 자리도 없어 역과 거리를 전전한 노숙자들의 깨달음이다. 한계상황에서 자기를 비하하고 삶의 전장(戰場)에서 모든 걸 포기했던 그들이 토해낸 삶의 언어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법도 하다. 따뜻한 밥 한 그릇 대접하지 못하는 게 인문학이란 걸 세상이 다 아는 마당인데 노숙자들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그래도 이들은 세상의 편견보다 무서운 자신과의 싸움에서 당당히 이긴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23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에서 열린 보기 드문 졸업식 풍경은 환환 웃음보단 울음이 많았다. 검은 학사모를 쓴 11명은 이제 어엿한 ‘노숙인대학’인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 2기 졸업생이 됐다.
수료증을 두 손에 꼭 쥔 이홍렬(54)씨에게 인문학은 배움에 대한 갈증을 푸는 오아시스였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모 항공사의 스튜어드로 16년간 세계를 누비며 사무장까지 지냈다. 그러나 1996년 미국 뉴욕에서 호기롭게 시작한 사업은 1년 만에 풍비박산이 났다. 외환위기까지 겹쳐 가세는 순식간에 기울었다.
일이 필요했지만 그는 “나이가 많은데다 전문지식이 없는 나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고 했다. 온갖 잡일을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2000년 거리로 내몰렸다. “배움이 그토록 소중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지난해 5월 어느날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가 인문학 강좌를 연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줄기 빛처럼 다가섰다”는 그는 마지막 기회를 놓칠 새라 그 길로 인문학을 만났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열정으로 버티었다.
인문학을 만난 모든 노숙인이 이씨와 같지는 않았다. 1기(2005.9~2006.5) 수강생이었던 허문종(41)씨는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일주일에 사흘, 2시간씩 진행되는 철학 역사 문학 글쓰기 수업은 생존의 문제 앞에 호사나 다름 없었다.
여전히 거리엔 희망이 없었다. 허씨는 2기 과정에 들어와 인문학과 재회했다. 그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몰랐다”며 “끝없는 회의와 무력감에 젖어 있던 터라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바꿔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었다”고 고백했다.
대부분 저학력인 노숙인들에게 토론과 학습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센터 김자옥(31ㆍ여) 간사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부정하고 싶은 분노 때문인지 욕설과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공동 체험과 나눔의 시간이 쌓일수록 존재의 소중함과 관계를, 다시금 삶을 긍정하는 법을 서서히 알아갔다.
이홍렬씨는 다음달 6일 방송통신대 합격자 발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는 관광학과에 진학해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통역사로 일할 꿈에 부풀어 있다. 그는 “쉽지 않은 길임을 잘 알지만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았으니까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이씨처럼 향학열을 불태우는 이도, 다시 가족의 따뜻한 품에 안긴 이도, 새 직장을 찾아 한걸음을 내딛은 이도 있다. 모두 그렇게 미래를 향한 준비를 재촉하며 과거의 흔적을 지우고 있다. “나는 요즘 이상하리만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느낀다. 내가 몰랐던 수많은 일들, 희망, 꿈,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졸업생 차제선(60)씨의 희망 노트에는 그렇게 적혀 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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