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의 습격에 개미들이 맞서기 시작했다. 할인점과 수퍼수퍼마켓(SSM=슈퍼마켓과 할인점 중간형태) 등 거대 유통업체들의 진입을 막으려는 중소상인들의 저항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영세 자영업체 보호를 위해 대형유통업체들에 대해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2003년 대형 할인점의 입지제한 방침을 밝힌 대전광역시는 올 연말까지 할인점 신규 출점을 불허할 계획이다. 경기 광명시는 지난해 준주거지역에서 건축 연면적 3,000㎡(900평) 이상 대형유통점의 입지를 제한하고, 이보다 규모가 작아도 할인점 백화점 쇼핑센터의 신축은 허용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부천시, 청주시, 전주시 등도 조례를 통해 할인점 입지를 제한하고 있으며, 대구 남구청도 지난해부터 주거 및 준주거지역에서 할인점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심지어 완공된 할인점의 준공허가를 내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말 전주시 덕진구에 지하1층, 지상6층 짜리 할인점을 완공했지만 시측은 사용승인 신청서를 반려했다.
전주시측은 "홈플러스는 2004년 지역업체가 교통영향평가를 받은 부지와 사업권을 인수해 매장을 지어 진출했으니 홈플러스 브랜드에 걸맞게 교통대책을 다시 세우라"며 사용승인을 거부한 상태다.
롯데마트도 지난해 군산시에 지상7층 규모의 할인점을 완공했으나 시측은 '연간 총매출액의 1% 지역복지기금 환원, 85% 이상 현지인 채용' 등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며 할인점과 진입도로의 준공허가를 보류하고 있다.
소상인들도 조직적 저항에 나섰다.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를 비롯한 40여개 소상공인단체들은 이날 '대형유통점ㆍSSM 확산저지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했다. 이들은 "할인점들의 무한출점경쟁에 이어 최근에는 1,000평 미만의 SSM 확대에 나서는 등 영세한 중소유통업자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외국의 경우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국가에서 일요일 영업 제한ㆍ금지 등을 골자로 한 할인점 규제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에선 월마트를 아예 못들어오게 하는 카운티들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형 할인점의 개설등록제를 허가제로 전환하고 ▦시장, 군수, 구청장이 할인점에 대해 의무휴업일수와 영업종료시각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하는 중소상인 보호법안이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다.
하지만 대형 유통업체들은 "할인점이나 SSM을 못 들어 오게 하는 것은 소비자들이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라며 "어떤 정책이 과연 소비자 후생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원종문 남서울대 유통학과교수는 "상당수 할인점들이 적자를 내는 등 과잉투자 상태인데도 1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무리한 출점경쟁을 하고 있다"며 "업체 스스로가 출점을 자제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불가피할 경우 지자체가 이익의 일부를 지역개발세로 걷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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