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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무죄 선고/ "무죄… 무죄…" 박수는 이내 눈물로

입력
2007.01.24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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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무려 32년을 기다린 단어였다. 하지만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 피고인 우홍선 송상진 서도원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도예종 여정남씨 8명은 재판장의 선고를 들을 수 없었다. 1975년 사형선고를 받은 지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돼 세상을 등졌기 때문이다. 부인, 조카 등 유가족들이 피고인 석에 앉아 시커멓게 타버린 마음을 무죄 선고로 달랬다.

인혁당 재건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311호 중법정은 선고 30분 전부터 유가족과 시민단체 회원들로 가득 찼다. 이들은 무죄를 확신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표정은 밝았고 32년 간의 활동이 결실을 맺는 순간을 자축하는 모습이었다.

재판이 시작된 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문용선 부장판사가 판결 이유를 설명하며 연이어 무죄를 선고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75년 사건 당시 여정남씨 변호를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 헌신적으로 유가족들의 뒷바라지를 했던 제임스 시노트 신부, 문정현 신부, 민청학련 사건의 ‘수괴’로 지목됐던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 유인태 장영달 의원,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당의장 등도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 기쁨을 함께 했다.

하지만 재판이 끝나자 이내 슬픔과 분노의 소리가 밀려왔다. 하재완씨 부인 이영교씨가 법정 밖 복도에서 “판결을 뒤집을 수 있으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했던 사람들은 나와 보라”며 울부짖자 여기저기서 훌쩍 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이씨는 “아이들이 ‘아빠는 왜 안 오냐’며 보챌 때 수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며 “남편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는 살아야만 한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고 32년을 쌀알을 모래알 씹듯 살았다”고 회상했다.

우홍선씨 부인 강순희씨는 “울분이 가득 차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주먹으로 벽을 쾅쾅 때리며 마음을 달랬다”며 “우리 가족들의 손으로 판결을 뒤집어 먼저 간 사람에게 조그만 위안이 된 게 다행이다”고 말했다.

은행 직원, 의상실 운영, 식품 판매 등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 왔다는 강씨는 “간첩의 자식이라는 누명을 피하게 하려고 자식들에게는 내색하려 하지 않았다”며 “오늘도 자식들이 법원까지 데려다 준 다는 것을 마다하고 지하철을 타고 왔다”고 말했다.

강씨는 “남편이 서대문 구치소에 있을 때 면회를 허락해 주지 않아 구치소 뒷산에 올라가 커다란 플래카드를 흔들며 얼굴이라도 한 번 보려고 했었다”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유가족 등의 모임인 ‘인혁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성명서를 내고 “이번 판결은 32년간을 피눈물로 살아온 유족들의 끈질긴 싸움의 승리이자 인권의 승리”라며 “하지만 형장에서 8명이 삼켰을 마지막 신음소리가 아직도 천둥같이 귓가에 울린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국가는 유가족과 피해자들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고 이들을 위한 법적ㆍ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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