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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의 미디어 비평] 드라마의 진화 '하얀 거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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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의 미디어 비평] 드라마의 진화 '하얀 거탑'

입력
2007.01.24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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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주말드라마 <하얀 거탑> 이 던지는 사회적 의미는 간단치 않다. 우선 이 텍스트는 우리 사회 각 부문을 파고든 '정치의 과잉'이, 대중문화의 대표적 장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의 영역에도 예외 없이 스며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로 읽을 수 있다.

메디컬 드라마가, 단선적인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시청자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데만 골몰하는 것처럼 보이는 통속적인 정치 드라마보다 더 정치적인 내용으로 그리고 더 현실감 있게 '정치적 인간들'의 모습을 솜씨 있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현상이다.

노회한 병원 부원장 우용길(김창환)이 야망만 클 뿐 파워 게임의 경험이 부족한 의사 장준혁(김명민)을 무릎 꿇게 만드는 장면은 인간 사회에서 작동하는 권력 관계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 즉 권력이란 현실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이며 또 어떻게 행사되는 것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 텍스트는 TV 드라마 장르의 진화를 예감케 한다. <종합병원> 이나 <의가형제> , <해바라기> 와 같은 1990년대의 메디컬 드라마에서는 병원과 의사 직은 단지 하나의 배경으로만 존재할 뿐 남녀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가 내러티브의 핵심이었다. 이와는 달리 <하얀 거탑> 은 메디컬 드라마의 새로운 전형을 열어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우선 이 드라마는 진지하다. 대하 역사 드라마건 트렌디 드라마건 주말 연속극이건 장르와 방영 시간대를 불문하고 텍스트 내 이곳 저곳에 웃음 유발의 기제를 배치하는 것이 이젠 하나의 공식처럼 굳어져버린 상황에서 시종일관 진지한 톤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다만 이 드라마에도 예외 없이 불륜의 코드가 섞여 있는 것은 최근 한국 드라마의 경향성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하얀 거탑> 의 한계라고 분명히 지적할 수 있겠다.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행위와 언설들이 드라마의 중심 축을 이루고는 있지만, 한편에서는 소위 직업 윤리(professional ethic)에 대한 나름의 고민과 의사-환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시각이 들어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진정한 의미의 '전문직 드라마'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것이 단순히 어린 암 환자에 대한 한 젊은 의사의 연민의 형태 등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그러나 이렇게 사명감을 가진 '직업인으로서 의사'의 모습은 최근 한국의 드라마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랑에 빠진 의사'의 모습에 비해 매우 낯선 게 현실임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하얀 거탑> 을 통해 메디컬 드라마라는 장르가 하나의 본격적인 장르로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제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된 셈이다.

마지막으로, 이 드라마는 제대로 된 '문화적 번역'을 통해 양질의 드라마(quality drama)를 만들어 내는 작업도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치 가 <수사반장> 과 <경찰청 사람들> 이후 한국의 TV 프로그램 지형에서 홀연히 사라진 경찰 수사물 장르를 재점화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듯이, 역시 미국에서 수입된 과 <그레이 아나토미> 와 더불어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하는 <하얀 거탑> 이 메디컬 드라마-그리고 나아가 전문직 내지 특수직역 중심의 드라마-라는 '세분화된 하위 장르'를 다시 활성화시켜, 한국의 대중문화가 드러내는 결들을 더욱 다양하고 풍성하게 하는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해 본다.

그 과정에서, 다시 말해 이 드라마가 의학과 병원 그리고 의사들의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다룸에 있어, 의사들의 세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파워 게임의 장으로만 지나치게 정치화시켜 묘사한다거나, 소위 과학 지상주의 내지 과학 중심주의(scientism)에 매몰되어 병원과 수술실을 첨단 과학 장비와 테크놀로지로 가득 찬 곳으로 표상함으로써 현대 과학과 의학에 대한 맹신을 불러일으킨다거나, 의학을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단지 외과의의 수술 능력이나 자신감 따위로 환원시켜버리고 마는 경향을 경계해야 함은 물론이다.

김영찬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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