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쟁시대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경영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세계적 수준의 협력업체가 뒷받침해야만 세계적 수준의 기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브랜드파워와 마케팅능력이 중소 협력 업체들의 특화된 부품기술력과 결합돼 강력한 ‘상생 편대’를 구축한다면, 어떤 외부의 폭풍우도 성공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본보는 대기업과 중소협력 업체들이 힘을 합쳐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국제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사례들을 시리즈로 집중 조명할 예정이다. <편집자주>편집자주>
경기 화성시 봉탄면에 자리한 삼성전자 1차 협력업체 ㈜DSLCD. LCD패널 제작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인 백라이트 유닛(BLU:LCD 화면전체를 균일한 밝기로 유지해 주는 배면광원장치)을 삼성전자에 전량 납품하는 기업이다.
이 회사 사무실 한 켠에 걸려있는 구호가 눈길을 끈다. ‘글로벌 원 프라이스(Global One Price)’. 이 회사 오인환 사장은 “품질은 물론 가격에서도 세계제일의 경쟁력을 갖추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DSLCD는 지난해 초 깊은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인건비가 싼 중국 업체들에 비해 품질은 좋지만 가격에서 밀리고 있었기 때문. 회사측은 삼성전자에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고, 이 때부터 양 사 담당자들은 매주 한차례씩 만나 집중적 컨설팅을 실시했다. 그 결과, 불필요한 생산공정을 단순화하고 설비자동화를 도입해 생산라인 투입인력을 절반가량 줄이는데 성공했다.
또 삼성전자가 주선한 일본 토요타 자동차 및 대만 경쟁사의 공장견학을 통해 효율적 생산방식도 체득했다. 이 덕분에 원가 35%절감과 함께 생산성은 2.8배로 높아져 94억원의 재무적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중국업체와 가격경쟁에서도 밀리지 않는 수준으로 올라서게 된 것이다.
사실 TV, 노트북, 모니터 등에 쓰이는 LCD패널을 생산하는 국내외 많은 업체들은 지난해 공급과잉에 따른 판매단가 하락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19개월 연속 전체 LCD 매출액 1위를 차지하며 세계정상을 이어갔다. 대형 패널수요가 급팽창할 것이라는 선견지명과 경쟁사보다 한발 앞선 신속한 투자, 뛰어난 기술력이 합작해낸 결과다.
하지만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되는 삼성전자의 생산라인에 발맞춰 혁신적 부품을 공급해온 협력사들이 없었다면 세계정상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삼성전자는 1차 협력업체는 물론, 이들에게 원자재를 공급하는 2차 협력업체까지 하나의 라인으로 구축하는 상생경영을 펴고 있다. 삼성 글로벌 넘버원의 비결은 기존의 윈(Win)-윈(Win)을 넘어 ‘윈(삼성전자)-윈(1차 협력업체)-윈(2차 협력업체)’으로 상생 범위를 확장시킨 데 있는 것이다.
㈜DSLCD는 이런 맥락에서 지난해 11월 또 하나의 큰 일을 해냈다. 삼성전자로부터 10억원의 자금과 노하우를 지원받아 BLU 원자재인 섀시를 납품하는 2차 협력업체(파인디앤시)와 물류 전산시스템을 통합한 것. 과거엔 삼성전자 생산담당자가 실시간으로는 1차 협력업체(DSLCD)의 납품 수량만을 알 수 있었던 데 비해, 이제는 2차 협력업체의 원재자 재고현황까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DSLCD 김철진 상무는 “시행한 지 두 달 정도 밖에 안됐지만 2차 협력업체에서 자재를 받아 가공한 뒤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기간이 종전의 2.5일에서 1일로 줄어드는 등 물류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2차 협력업체까지 모두 챙길 수는 없는 노릇. 이들이 스스로 혁신에 나서지 않으면 돕는 데도 한계가 있다.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의 ㈜인지디스플레이는 바로 ‘스스로 도운’ 케이스다. 인지디스플레이는 모니터 앞면에 쓰이는 톱섀시(삼성전자에 직납)를 제외하고 삼성전자 LCD부문 1차 협력 파트너들인 DSLCD, 태산LCD 등에 섀시를 대는 2차 협력업체다.
이 업체가 삼성측으로부터 “가격경쟁력이 중국업체에 비해 15% 떨어지므로 협력업체끼리 원자재 표준화를 한번 해보라”는 제안을 받은 것은 지난해 초. 원자재가 제품원가의 50~7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낭비요소를 줄이는 표준화는 꼭 필요했지만, 서로 납품경쟁을 하는 2차 업체들로서는 경쟁사에게 행여 기술이 유출될까 협력을 꺼리는 상황이었다.
이 때 인지디스플레이가 총대를 맸다. 표준화는 실제 기술 유출과는 관련이 없는 사항임을 설득했다. 결국 2주일에 한번씩 4개 경쟁사들이 만나 5개월간 논의한 끝에 원자재를 납품받을 때 폭, 재질, 두께를 표준화하기로 했다. 2차 협력업체들끼리 원가절감을 위해 의기투합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인지디스플레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표준화 작업을 자기 공장내부로 확장시켰다. 생산흐름의 합리화로 작업동선을 줄이는 공정표준화, 불량품의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는 검사표준화 등을 추가로 채택해 27억원의 원가를 절감했다. 백선기 관리부장은 “3대 표준화를 통해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중국 업체들을 뛰어 넘을 수 있게 됐다”며 “올해는 제품 제조방법을 획기적으로 변경해 30% 이상의 추가 원가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능한 대기업치고 협력업체가 유능하지 않은 곳은 없다. 역으로 협력업체가 허술한 기업치고 잘 나가는 예는 없다. 양자의 관계는 공생을 넘는, 상생의 파트너십인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1차는 물론 2차 협력업체들까지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원가를 낮춰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상생 협력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이것이 삼성전자 경쟁력의 또 다른 축”이라고 말했다.
화성ㆍ안산=박진용 기자 hub@hk.co.kr
■ DSLCD 오인환 사장 인터뷰
“삼성전자에서 한 달에 두 번씩 현금결제를 해주는 덕에 저희도 원자재 납품업체에 어음 없이 전액 현금으로 줍니다.”
지난해 5,7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삼성전자 협력업체 ㈜DSLCD의 오인환(51) 사장은 인터뷰를 부담스러워 했다. 회사 설립 이듬해인 1999년 DSLCD에 합류, 올 초 사장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아직 이사회가 열리지 않아 정식 대표이사를 달지 못했기 때문. 하지만 삼성전자와의 상생협력이 화제에 오르자, “삼성을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다. 일할 기분이 난다”며 말문을 열었다.
오 사장은 “삼성은 협력업체의 혁신 없이는 자신들의 혁신도 없다는 생각으로 협력업체를 적극 키워주고 있다”며 “지난해의 경우 2차벤더(협력업체)와의 전산망 통합, 자동화 설비 투자 등을 위해 60억원을 무이자로 지원해 줬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전자가 LCD부문 세계를 1위로 등극하면서 우리 회사도 생산역량을 꾸준히 키워 설립 9년만에 5,000억원대의 매출을 내는 회사로 급성장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오 사장은 “글로벌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이익률이 떨어지는 추세지만 삼성전자와 협력을 통해 특화된 기술을 계속 개발해 나간다면 중국 및 대만 업체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세계 최고의 백라이트유닛(BLU) 제조업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화성=박진용기자
■ 삼성전자 상생 어떻게 하나/ 2008년까지 6,000억원 협력사 지원
“인력양성, 마케팅, 기술개발 등을 중심으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에 보탬이 되는 방법을 찾아 협력해 나가겠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난해 말 열린 청와대 상생회의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실제로 삼성은 2008년까지 삼성전자가 6,000억원을 중소 협력업체에 밀어주는 것을 비롯, 각 계열사마다 협력업체 지원방안을 수립해 시행중이다.
특히 해마다 10조원이 훨씬 넘는 금액을 설비투자 및 연구ㆍ개발(R&D)에 쏟아 부으며 세계 시장을 이끌고 있는 삼성전자의 경우, 협력업체들이 관련부품을 적시에 공급하며 따라오지 못할 경우 신제품을 내놓을 수도 없는 형편이어서 협력사들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상생경영에 열심이다.
삼성전자는 2004년부터 체계적인 협력업체 지원을 위해 전담조직을 구성, 운영해 오고있다. 지원의 포인트는 ▲부품ㆍ설비의 국산화 ▲차세대 기술개발 및 육성 ▲공장 선진화 ▲협력사의 인재육성 등에 두고 있으며 ▲무이자 장기자금 대여 ▲3~6개월간 기술인력 단기파견 ▲협력사 임직원 직무교육 등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기술 및 생산성 향상은 물론 협력사의 핵심인력 양성을 위해 전문인력 및 협력사 오너 2세를 대상으로 경영기업을 전수하는 등 삼성의 인재제일 경영철학을 협력사에까지 전파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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