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 일본은 같은 한자 문화권이지만 서로 다른 문화를 키워왔다. 전통 시대를 지나 현대로 넘어오면서, 세 나라가 자국의 경험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다. 서울 마포의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리고 있는 ‘오리엔탈 메타포’ 전은 세 나라의 현대미술이 전통적인 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지 살피는 자리다. 작가 11명의 회화, 영상, 설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았다.
전시 작품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일본 작가 아이다 마코토의 그림이다. 그의 그림은 그로테스크하다. 두 무릎 아래와 손이 절단된 채 개 목걸이를 차고 앉아 달을 바라보는 소녀(<개(달)> )는 무력감에 젖어 있다. 일본 전통 판화 우키요에(淨世繪ㆍ원색의 목판화)를 패러디한 이 그림은 일본이 서양에 대해 갖고 있는 열등감과 그로 인한 폭력성의 은유다. 개(달)>
거대한 도롱뇽에 편안하게 기대어 누운 두 소녀의 벌거벗은 몸(<거대한 도롱뇽> )은 연약하고 아름답지만, 우툴두툴 징그러운 도롱뇽의 피부와 대조를 이루며 어떤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도롱뇽이 한 번 꿈틀거리기만 하면 무서운 혼란으로 변할 가짜 평화, 그 탐미적인 아름다움이 인상적인 이 그림에서 도롱뇽은, 작가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붕괴되어 가는 아름다운 일본의 상징처럼, 사라질 위기에 처한 동물”이다. 거대한>
또다른 일본 작가 호키 노부야는 선묘(線描)의 달인이다. 에도(江戶)시대 전통 회화부터 오늘날의 만화와 애니메이션까지, 일본 문화가 보유한 선묘의 뛰어난 전통이 그의 그림 속에 살아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5명의 한국 작가는 전통을 박제하지 않고 현대적 기법으로 새롭게 창조하는 다양한 실험을 보여준다. 같은 전통 산수화를 다루더라도 작가마다 해석이 다르다. 예컨대 임 택의 <옮겨진 산수> 시리즈는 평면 그림인 산수화를 3차원 입체로 바꿔 관객이 작품 속에서 산수를 노닐게 했고, 김종구는 바닥에 쇳가루를 쌓고 쇳가루로 글씨를 쓴 다음 이를 바닥과 수평 높이에서 카메라로 찍어 영상 산수로 변형했다. 옮겨진>
유승호의 그림은 언뜻 보면 옛날 중국 산수화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깨알 같이 작은 글씨로 잔뜩 써넣은 슈(shoooo), 야호(Ya~ho) 같은 단어가 산수 형상을 이룸으로써, 물 소리나 메아리를 귀가 아닌 눈으로 듣게 만들었다. 민화에서 보던 화려한 모란꽃을 강렬한 이미지로 재창조한 김근중의 그림, 종이를 여러 장 겹치고 인두로 지져 구멍을 냄으로써 신윤복의 풍속화 <월하정인> 위로 현대 여성의 얼굴을 띄운 이길우의 점묘화도 전통의 재해석이 낳은 흥미로운 작품이다. 월하정인>
한편 중국 작가 치우 쯔지에는 사진 위로 글씨가 씌어지는 디지털 서예를, 대만 작가 린 지운팅은 터치 스크린을 만지면 그림 속 나비가 다른 그림 속으로 날아드는 인터랙티브 영상 사군자를 내놓음으로써 현대 기술과 전통의 접목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전시는 2월 22일까지. (02)3141-1377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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