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남발하는 이런 안건을 통과시키면 나는 퇴장하겠다.” (김영배 국민건강보험공단 사외이사)
“조부모가 사망해도 기본급의 1배(평균 200만원)를 지급하고 있는데, 다른 곳에 비해 많다.”(김세형 철도공사 사외이사)
공공기관들이 조부모가 사망해도 기본급에 해당하는 위로금을 주거나, 연차휴가가 버젓이 있는데도 자녀입양ㆍ성희롱 휴가 등의 명목으로 별도의 휴가도입을 추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공무원 자녀에게는 등록금을 무이자로 대부해주고, 심지어 배우자가 유학을 가도 4년씩이나 휴직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22일 기획예산처의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게재된 공공기관들의 이사회 의사록에 따르면 사외이사들은 지난해 이 같은 문제점들을 지적했으나, 충분한 경영정보를 제공받지 못하는 등의 여건으로 불합리한 사항을 끝까지 막지 못한 경우도 상당수 있었다. 김주일 한국농촌공사 사외이사는 지난해 5월 열린 이사회에서 “우리는 국민세금으로 보수를 받고 있다”면서 “이사회가 내부견제, 경영감시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우선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무차별적인 휴가부여 안건을 통과시키려다 사외이사의 반발을 샀지만, 다음 이사회에서 휴가일수를 조금 줄여 통과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록에 따르면 김영배 사외이사는 지난 해 11월 27일 열린 이 공단의 임시이사회에서 “자녀를 입양할 경우 7일, 성희롱을 당할 경우 7일의 휴가를 각각 준다는 회사측 안건은 적절치 않다”면서 “이런 안건을 통과시킨다면 나는 퇴장하겠다”고 밝혔다.
김 이사는 “토ㆍ일요일을 쉬는 데다 연차휴가 15∼25일, 연간 17일에 이르는 공휴일 등을 감안하면 1년에 일할 수 있는 날은 절반에 불과하다”면서“이런 상황에서 발생하지도 않을 휴가를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사회는 이 안건을 보류했으나 한달후인 12월 28일 이사회에서 성희롱휴가를 5일로 줄여 통과시켰다.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철도공사는 배우자의 조부모가 사망해도 기본급의 100%에 이르는 금액을 사망위로금으로 지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해 6월에 열린 이사회에서 외조부모는 위로금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여전히 조부모 사망시에는 평균 200만원에 이르는 위로금이 지급되고 있다. 김세형 사외이사는 “민간기업의 경우에는 부모 사망시에도 일정액인 30만원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무원연금공단은 지난 해 공무원 본인과 자녀의 국내ㆍ해외 대학 등록금을 무이자로 대부해주는 대여장학금 관련 액수를 138억8,500만원이나 추가하는 2006년도 추가경정예산안을 이사회에 안건으로 올리기도 했다. 한국지역난방공사 이사회에서는 배우자가 유학해도 4년 휴직이 가능하도록 하는 인사규정 개정안과, 최하위 등급을 받은 직원에게도 상여금을 330%나 지급하고 있는 것에 대해 사외이사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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