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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삐딱한 기자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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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삐딱한 기자의 변명

입력
2007.01.23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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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쯤 선배 한 분이 말했다. 허물없는 사이인 몇 언론사 선후배가 점심을 먹는 자리였다. "박래부씨만 혼자서 삐딱하게, 독특하게 글을 쓰고 있어." A신문, B신문까지 모두 반(反)노무현으로 돌아섰는데, 나만 참여정부를 지지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다른 사람들도 미소로 그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선배의 배려와 염려가 송구스러웠다. 한편으로 타인을 통해 나의 고립이 확인 되자, 서늘한 바람이 등을 스치는 듯했다.

다른 선배로부터는 공개적으로 면박을 받은 적도 있다. 내 글이 "옛날 같으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글들"이라는 것이다. 하찮은 내 글을 지지하고 격려해 주는 고마운 선후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을 거리낌 없이 해주는 선배들 또한 얼마나 감사한가.

● 선배들의 충고와 질책

"옛날 같으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글들"이라는 말이 사정을 잘 설명해준다. 전적으로 맞는 말씀이다. 내가 쓴 글을 돌아본다. 큰 줄기는 민주적 개혁을 지지하고, 민족통일을 주장하고, 사회의 진보 욕구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것 등이었다. 군사독재 시대 같으면, 이런 글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지금은 군부독재가 물러가고 자유민주주의를 호흡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소신껏 민주적 주장을 펼 바탕이 마련되었다고 믿는데, 어떤 이는 내 글을 못마땅해 한다. 이 부분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확장하기 위해 글을 써 왔으나, 결코 건전한 상식선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나는 현 정부가 DJ정부의 햇볕정책을 발전시키기 위해 남북교류를 확장하는 것, 국가보안법을 개정 또는 폐지하고 형법으로 보완하는 것, 언론관계법 개정을 통해 일부 신문사의 시장지배적 지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 등을 주장해 왔다. 이 밖에도 송두율교수에 대해 우리 사회가 포용적 태도를 보일 것과, 'X파일'을 공개한 MBC 이상호 기자의 보도를 옹호했다.

요즘이 마침 대통령이 언론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때라,변명하기가 더 불편하고 구차해졌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서 친정부적 글만 쓴 것은 아니다. 행정수도 이전과 출산 장려, 스크린쿼터 축소 등을 반대했고, 이해찬 총리 골프파동 때는 공직자의 골프 금지를 주장했다.

현 정부의 인재풀이 넉넉치 못하고 자기들끼리 자리를 나눠 차지하는 폐쇄된 인사에는 환멸을 느끼며, 또 그 점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에 대해 매섭게 비판하더라도 국정이 정상 운영될 수 없을 정도로 기본적 틀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건국 이래 가장 민주적인 사회다. 대통령은 예전에 비해 많은 권력을 놓았다. 그는 언론 통제도 안 하거나, 못한다. 못한다면 언론사와 기자의 힘이 세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은 기자가 권력의 눈치 안 보고 필봉을 휘두른다. 민주화 이전의 독재주의 하에서는 어림 없는 언론자유를 누리고 있다.

나는 다른 기자의 글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 쪽에서 보았을 때 나는 비겁하거나 어용 기자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민주적인 정부에게 연일 타격을 가하는 것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수구세력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이, 민주적 정부를 사사건건 공격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현 정부를 비판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 비판의 균형유지도 중요

유신시대에 언론계에 들어와 1980년 '서울의 봄'이 유린당하는 것을 겪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약 지금이 군사정부 시대라면, 나는 지금 같은 논조의 글을 쓰기 어려웠을 것이다.

대신 많은 기자들이, 마치 지금의 나처럼, 정부를 지지하는 글을 쓸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바꿔 말하면, 기자들이 지금 같이 정부에 대한 비판의 글을 걱정 없이 쓸 수 있게 만든 민주적 정부를 오히려 흔들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박래부 논설위원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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