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선 유력주자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정책공약과 관련한 자문교수단을 구성해 놓고 정기적인 교류를 해오고 있다. 각 분야의 교수들을 지역별 포럼이나 연구재단 형태의 모임을 구성, 해당 주자의 ‘대통령 만들기’를 위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느라 한창이다.
이렇듯 각 캠프의 자문교수단은 기본 골격이 완성된 지 오래지만, 캠프별로 여전히 줄을 대려는 교수들로 문턱이 닳고 있다. 한 대선주자의 측근은 “자문 교수단이 언론에 발표된 이후에도 교수들의 문의는 계속되고 있다”면서 “대부분 캠프 내 지인들을 고리로 대선주자와 지근 거리를 유지하려는 정치교수들이 대부분”이라고 귀뜸했다.
정치 교수들은 그럴듯한 말을 앞세워 캠프관계자에게 접근한다. “기가막힌 대선 공약이 있다” “지난 대선에서 OOO후보 캠프에서 핵심 브레인으로 활동했다”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들의 말은 부풀려진 경우가 대부분이라 정치교수들의 실제 효용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한다. 자문단에서 부분부분 새롭게 필요한 분야에 대해서만 ‘원포인트 레슨’ 식으로 먼저 도움을 요청하지,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교수들은 오히려 ‘팀워크’만 해칠 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이쪽 저쪽 캠프를 넘나드는 ‘양다리형’ 교수들과 해당 학계에서 별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량급’ 교수들도 적지 않아 각 캠프에서는 교수들의 합류 전에 까다로운 검증작업을 벌인다. 영입은 자문단의 좌장격인 명망있는 교수가 후배 교수들을 데려오는 경우가 일반적인 케이스. 돕겠다고 찾아 오는 교수들을 함부로 내칠 수도 없어 “정책공약과 관련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추후에 보고서 형태로 제출해 달라”고 설득한다고 한다.
캠프를 노크하며 꼴불견 행태를 보이는 이들도 상당수다. 합류의사를 밝히기 전에 자신의 전공 분야에 어떤 교수들이 들어와 있는 지부터 묻는 경우다. 자기보다 학계에서 우위에 있는 교수들의 이름이 나오면 슬며시 합류의사를 접는다.
또 자신의 전공 분야를 캠프 내에서 통째로 관리할 수 있는 ‘팀장’ 자리를 먼저 요구하면서 거래를 시도하기도 한다. 이밖에 학계에서는 “왜 캠프에서 내게 연락이 오지 않느냐”는 볼멘소리를 하는 교수들부터, “특정 캠프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교수들까지 대선때마다 연출되는 볼썽사나운 광경이 계속 연출된다.
현재 대선 주자 군의 캠프와 직ㆍ간접적 관계를 맺고 있는 교수들은 캠프별로 수십명~수백명에 달하지만 본격적으로 대선 레이스에 접어들면 규모가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들 가운데는 중견 교수들보다는 40~50대 젊은 교수그룹의 참여도가 높다.
대학교수들의 정치참여는 전문성의 접목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세 과시형 구색 갖추기와 일부 교수들의 출세욕이 결합된 형태로 이뤄져 있는 경우도 있어 정치권과 학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정치 교수들은 정치권 주변에서 서성이며 선거를 돕다가 해당 주자가 대선에 이길 경우 나중에 한자리를 해보겠다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고건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 이후 뜻을 같이 했던 일부 교수들이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 다른 캠프를 노크한다는 소리도 들리고 있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학문 현실적용” VS “대박만 노려”
학문적 성과의 현실 접목인가, 권력 지향의 줄서기인가.
대선 후보 캠프들의 활동이 분주해지고 ‘정책자문’이라는 이름으로 각 캠프와 대학가 사이에 물밑 ‘러브콜’주고받기가 봇물을 이루면서, 이른바 ‘폴리페서’(Poli-fessor) 논쟁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군사독재 시대가 막을 내리고 민주화, 다원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정ㆍ관계 진출=어용 교수’라는 등식은 사라진 지 오래다. 나아가 전문가라 할만한 인재 풀(Pool)이 두텁지 못한 현실에서, 지식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교수(학자)들의 정치(정책) 참여는 기성 정치인에 대한 뿌리깊은 혐오나 관료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국민의정부 시절 청와대 수석을 지낸 한 교수는 “연구 성과를 정책에 적극 반영하며 관료주의 극복에 적잖이 기여했고, 퇴임 후에는 그 경험을 토대로 학문적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특정 대선 캠프에 참여한 사실을 떳떳이 밝히는 ‘실명제’를 전제로, ‘공익’을 위한 교수들의 정치 참여 옹호론을 피력해왔다.
그러나 정치 지향적 교수를 일컫는 ‘폴리페서’가 교수직을 발판 삼아 권력에 줄을 대 ‘한 자리’ 하려는 무리와 동의어로 통하는 데서 드러나듯, 교수들의 정치 참여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여전히 곱지 않다. 학계의 대체적 견해도 부정론에 기울어 있다.
염재호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치 활동을 연구, 교육과 더불어 교수를 평가하는 기준인 사회봉사의 한 형태로 볼 수 있고 누구나 정당 활동의 자유가 있는 만큼 원칙적으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면서 “그러나 정권 창출 이후의 ‘대가’를 노린다든가 본연의 임무인 연구와 교육에 지장을 준다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처럼 ‘원칙적 수용’과 ‘현실적 경계(警戒)’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비판론을 내놓았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의 비판은 한층 신랄하다. 그는 “지식인의 현실정치 투신은 조선시대 유교정치의 유산인데, 현대정치사를 놓고 보면 강단이 출세의 디딤돌로 악용되는 등 그 폐해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강단 지식의 정책 접목이 거칠게 이뤄지다 보니 오히려 현실을 왜곡하고 정책의 융통성을 떨어뜨리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면서 강단 출신이 주도한 참여정부의 대북 정책과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대다수 학자들은 특히 선거를 앞두고 특정 후보 캠프에 합류하는 행태에 비판의 날을 세웠다. 최근 한 대선 후보 캠프의 ‘러브콜’을 받았으나 거부했다는 소장 언론학 교수는 “필요에 따라 정책 자문을 할 수는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 특정 캠프에 발을 담그는 것은 지식을 매개로 선거 이후 ‘한 자리’ 얻겠다는 일종의 비즈니스 아니냐”고 꼬집었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도 “학자들이 대박을 노리고 도박판(정치판)에 뛰어드는 ‘타짜’가 돼가고 있다”고 개탄하며 정치권 책임론도 제기했다.
“과거 독재정권은 정통성의 부재를 메우기 위해 명망 있는 일류 학자를 ‘모셔’ 갔다면, 요즘 정계는 ‘줄 잘 서고 충성하는 사람을 쓰겠다’는 식이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캠프에 줄 선 몇몇 학자들이 뜻밖의 ‘대박’을 터뜨린 걸 보면서 이런 현상이 한층 심해져 ‘타짜’ 학자들을 양산하고 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인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는 “문제는 평소에는 침묵하다 선거철만 대면 정치권 여기저기를 기웃대는 기회주의적 행태”라면서 “현실 정치에 뜻이 있다면 평소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분명히 밝히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검증을 받은 뒤 당당하게 정치에 입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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