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화 ‘모나리자(Mona Lisa)’의 모델이 된 인물은 1542년 7월15일에 사망했으며, 그녀가 말년을 보낸 피렌체 시내의 한 수녀원에 매장됐다고 이탈리아의 전문가가 주장했다.
30년 가까이 피렌체 지역에 흩어져 있는 고문기록들을 추적해 온 고교 교사 주세페 팔란티는 “한 교회 문서에서 모나리자의 모델로 알려져 온 프란세스코 델 지오콘도의 부인이 1542년 7월 15일 사망, 산트 오솔라에 매장됐다는 기록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고 이탈리아 언론이 19일 보도했다.
모나리자에서 모나(Mona)는 이탈리아어로 유부녀에 대한 경칭이며, 리자(Lisa)는 엘리자베타(Elisabetta)의 약칭이다. 모나리자는 1479년 태어나 리자 게라르디지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부유한 비단 상인이었던 델 지오콘도의 두번째 아내로 5명의 자녀를 두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세페 팔란티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모나 리자는 63세로 사망했다. 그녀가 사후 매장됐다는 산트 오솔라 수도원은 그동안 사용하지 않아 황폐화된 상태인데 산 로렌조 바실리카 인근에 있다. 팔란티는 이탈리아 신문 라 레푸불리카와의 인터뷰에서 “모나 리자는 막내 딸 마리에타를 이 수도원에 맡겼으며 마리에타는 후에 수녀가 됐다.
또 모나 리자는 자신보다 4년 먼저 사망한 남편의 유언에 따라 이 수도원에서 말년을 보냈다”고 말했다. 고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지난해 성탄절 직전에 모나 리자와 관련된 것으로 확신하는 자료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다빈치 전문가인 카를로 페드레티는 팔란티의 이번 연구성과를 극찬하고 “첨단과학의 도움을 얻으면 유골로 얼굴의 모습을 복원할 수 있는 만큼 문제의 매장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또 다른 다빈치 전문가인 알레산드로 베조시는 당시 다빈치가 쓴 서한에는 ‘다빈치를 지원해준 피렌체의 귀족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정부를 모델로 했다’는 대목이 있다면서 이번 발견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다빈치의 원숙기에 해당하는 1503~1506년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모나리자’는 역사적 경로가 불분명한 점이 많아 적잖은 관심거리가 돼왔다. 리자 게라르디지가 ‘모나리자’의 모델이란 주장은 다빈치의 첫 전기를 쓴 16세기 작가 조르지오 바사리가 제기했으나, 그동안 진위 여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로마=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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