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정동채 의원 소환을 계기로 지난해 8월부터 본격화한 검찰의 사행성 성인오락기 비리 수사가 종착점에 다다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19일 사행성 오락이 급팽창할 무렵 주무 부처인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정 의원에 대해 “추가 소환계획이 없으며 법률적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에서 정 의원이 면죄부를 받음에 따라 ‘바다이야기’ 사태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은 고위 인사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의 조카 노지원씨, 노사모 전 대표 명계남씨 관련 의혹은 일찌감치 ‘근거없음’으로 결론났다. 감사원이 직무유기로 수사의뢰한 배종신ㆍ유진룡 전 차관 등 문화부 공무원들도 대부분 무혐의 처분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관계자는 “직무유기 혐의로 처벌하기가 외환위기 수사 때보다 더 어렵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검찰이 전국을 도박광풍에 몰아넣고 서민경제의 파탄을 불러온 데 대한 책임을 지울 ‘대어(大魚)’를 낚지 못한 모양새가 됐다. 고위직이라고 해봐야 구속 기소된 문화부 국장 1명이 전부다. 조성래 열린우리당 의원이 상품권 발행업체 지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막판에 수사 대상에 떠올랐지만, 이 역시 권력형 비리와는 거리가 있다. 국회의원 보좌관, 영상물등급위원회 공익요원의 비리만 등장하자 검찰이 ‘잡어(雜魚)’만 잡고 있다는 조롱 섞인 평가도 나왔다.
그럼 바다이야기 사태에 ‘대어’는 원래부터 없었던 것일까. 검찰은 “5개월동안 수사인력 100여명을 투입해 뒤졌는데도 나오지 않았으면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검찰의 판단은 상품권 인증ㆍ지정 또는 영등위 게임 심사 과정에서 로비가 워낙 횡행하다 보니 소문만 무성해졌다는 것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일이 진행된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물론 수사팀 내부에도 아쉬움의 목소리가 있다. 우선 상품권 업계 로비를 이끈 김용환(구속 기소) 안다미로 대표의 입을 열지 못했다. 또 계좌추적이 불가능한 현금으로만 거래하는 상품권 업계의 특성으로 인해 뇌물 범죄의 입증이 어려웠다. 여기에다 법원이 최근 영장을 잇따라 기각하면서 수사가 제대로 뻗어나가지 못했다는 점도 검찰은 ‘수사 미진’의 원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검찰 수사로 ‘바다이야기’ 사태가 가능했던 메커니즘은 물론이고 이면에 감춰있던 부패구조는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먼저 대기업까지 포함된 19개 상품권 발행업체 대부분이 사법처리될 전망이다. 사행성 오락산업은 상품권이 ‘도박용 칩’으로 쓰이면서 걷잡을 수 없이 번창했다. 검찰은 이들 업체가 사행성을 사전에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19일 현재 구속자는 46명이고 불구속 인원까지 포함하면 기소된 사람이 110명을 넘어섰다. 돈이 된다는 소문이 돌자 한몫 챙기려 브로커가 끼어 들고 정실과 로비의 전형적 부패 구조가 형성된 것이었다. 심지어 정모씨는 상고졸업이 최종학력인데도 경영학 박사를 사칭해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의 상품권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문화부 공무원 4명은 상품권 업체 주식에 투자했다 손해를 보자 차액을 고스란히 돌려 받았다.
“도둑 맞으려니 개도 짖지 않았다”는 대통령의 분노 섞인 말은 ‘바다이야기’의 현란한 불빛에 현혹돼 가산을 탕진한 피해자들의 기억 속에 아직 남아 있다. 정부 쪽에서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게 된 수사결과를 이들이 얼마나 납득할지는 미지수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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