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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들의 이웃돕기 '거리의 천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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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들의 이웃돕기 '거리의 천사들'

입력
2007.01.2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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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게 이렇게 뿌듯한 줄 미처 몰랐습니다.”

18일 서울 영등포구 노숙인 상담보호센터에는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매일같이 줄서고 받고 신세지는 것에만 익숙한 사람들. 누군가에게 빚지고 있다는 생각에 늘 표정이 어두운 노숙인들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정성스레 준비한 선물을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전달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노숙인들은 지난달부터 성금을 모았다. 2005년에 이어 두번째다. 50원~2만원씩 166명이 모은 돈은 모두 117만원. 이 돈으로 30여명의 노인에게 전달할 햄 세트와 두루마리 화장지를 샀다. 동사무소 직원이 추천해 준 독거노인들의 생필품이다.

노숙인들의 이웃사랑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됐다. 2005년 12월, 저녁 뉴스에서 불우이웃돕기 성금 명단이 방송되는 것을 보던 민윤찬(49)씨는 “우리도 저 사람들처럼 남을 도우면 어떨까”라며 동료 노숙인 김원필(55)씨에게 무심코 말을 건넸다. 김씨는 “그래, 우리라고 못할거 없지”라며 맞장구쳤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한푼 두푼 모였다.

처음에는 빈정대는 노숙인들도 많았다. “우리가 바로 불우한 이웃인데 누굴 돕자는 거냐”며 다짜고짜 따지는가 하면 민씨의 멱살을 잡고 대드는 사람도 있었다.

민씨는 “다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던 경험을 갖고 있어서인지 점차 많은 분들이 호응해왔다”며 “우리들도 마음과 정성을 모으면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석우(43ㆍ가명)씨는 이번에 5,000원을 냈다. 춘천에서 계란 장사를 하다 5년전 친구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재산을 모두 날리고 가정도 파탄나면서 3년전 서울로 올라와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노숙을 시작한 김씨는 “작은 돈이지만 내 스스로에게 떳떳해지고 싶었다”며 “항상 무언가를 받기만 하던 내 두 손에 남에게 줄 선물을 들고 간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감격스러워 했다.

이날 노숙인들은 양손에 영등포2동에 사는 독거노인들을 찾았다. 지난달 허리가 다쳐 3평 남짓한 쪽방에 누워있던 홍동운(82ㆍ여)씨는 사람들이 들어서자 일어나 앉아 김씨의 두 손을 꼭 쥐었다.

홍씨는 “자신들도 살기 힘들텐데 이렇게 찾아주니 고맙고 또 고마울 따름”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옆에 있던 이명하(42ㆍ가명)씨는 “4년동안 찾아 뵙지 못한 고향의 부모님이 생각난다”며 “어서 빨리 자활해서 아들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남지호(56ㆍ가명)씨는 “세상에는 우리보다 더 외롭고 어려운 이웃도 많은 것 같다”며 “노숙인이라는 피해의식보다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제대로 살아가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날 노숙인들과 함께한 이태혁(54) 영등포2동 주민생활지원팀장은 “처음에 노숙인들이 이웃을 돕겠다는 말을 듣고서 믿기지 않았다”며 “이분들이 모두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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