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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인터뷰] 소설가 이문열 "참 멋진 보수 되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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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인터뷰] 소설가 이문열 "참 멋진 보수 되고싶어"

입력
2007.01.2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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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가 이처럼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소비된 경우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소설가 이문열(59)씨. 언제부터인가 신문 문화면보다 정치면에 더 많이 등장하는 이 작가를 16일 오후 6시 서울 삼청동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새벽 1시를 훌쩍 넘겨서야 끝난 이 뜨거웠던 인터뷰는 그가 소통이 안 되는 존재가 아니라 소통이 부족했던 존재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

-인터뷰에 너무 흔쾌히 응해주셔서 의외였습니다.

"이거(100°C 인터뷰) 막 혼내키고 되게 무섭다카데요.(웃음) 그래서 예상문제도 만들고, 모범답안도 만들어 왔는데, 막상 만나니까 한 개도 생각이 안 나네. 사실 하도 고약한 경우를 많이 당해서 겁나요. 대충 세보니까 내가 안 한 말로 오해 받고 있는 게 19가지나 되더라고요."

-무슨 오해를 그렇게 받으셨다는 겁니까.

"가장 대표적인 게 '너 전라도지?'발언이에요. 2001년 11월 책 장례식 할 땐데, 그걸 주동한 사람들이 부산 사람이었어요. 내가 어릴 적에 부산서 5년간 살았거든요. 부산 사람들은 성격이 급하고 직정적이어서 한 권씩 책 모아서 불태우고 하지 않을 것 같아요. 같은 경상도끼리도 다르고, 호남도 전주, 광주 나름대로 작은 구별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11월 부산에 강연 갔을 때 '그 사람들 부산 사람 아닌 것 같다' 그랬어요.

그랬더니 책 장례식 주동격인 사람이 찾아와서 '내가 부산 사람 아니면 어디 사람입니까? 전라도 사람입니까?' 물읍디다. 내 실수라면 거기서 '어느 지역이든지 간에'라고 했어야 했는데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한 거예요. 그 사람이 '내가 할아버지 때부터 3대가 부산에서 살았다'고 한 말이 '이문열이가 '너 전라도지? 3대를 몰살하겠다'고 말했다카드라'고 퍼진 거예요. 내가 호남이라는 (책) 시장의 3분의 1을 잃으면서까지 그런 바보 같은 말을 할 이유가 없어요. 호남 사람들도 나를 적으로 만들어서 생기는 이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넘겼는데, 2000년부터 6년간 하나 둘씩 모이니까 이게 엄청난 데미지가 돼 버렸어요."

'너 전라도지?"발언

2001년'책 장례식'때 한 말이 와전… 내가 그런 바보 같은 말 할 이유없어

극우보수 비판 왜 안하나

전두환때 말 못한거 많이 부끄러워… 그게'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죠

향후 우파정권 예상하는데…

한나라 내부 경쟁 보기 꼴사나워… 1년 뒤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

-나머지 18가지는 뭔가요.

"미국 강연때 누가 '효순이 미선이 장례식 때 10만 명이 모였다는데 다들 용공분자 아니오?'하고 묻길래, '그런 식으로 말하면 한국에서 바보 취급당한다'고 답했는데, 그래도 자꾸 용공분자가 있지 않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오차범위를 생각해봐도 전체에서 2~3%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게 '촛불집회 때 2,000~3,000명의 간첩이 내려왔다'고 말한 걸로 보도된 겁니다. '일본 제국주의 때문에 한ㆍ중ㆍ일이 유럽 같은 지역공동체를 못 만드는 것 아니냐'고 한 말을 '이문열이 대동아 공영권의 실패를 아쉬워했다'는 식으로 보도하질 않나, 이런 것들만 모아서 책을 한 권 쓸까 생각 중입니다."

-선생님을 잘 아는 어떤 작가는 '공인 이문열을 가리고 있는 베일이 있다'는 말을 하던데요. 왜 그때그때 해명하지 않았나요.

"오만하게 말해서 저는 그 베일이 나를 해치지 못할 거라 생각해 가만히 있었어요. 염소라는 동물이 여름철엔 붙어 있고 겨울철엔 다 떨어져 있는데, 그게 여름엔 저 놈 시원할까봐, 겨울철엔 저 놈 따뜻할까봐 그런 거랍니다. 지금까지는 쓸데없이 내한테 붙어서 시비 붙이는 사람들 따뜻해질까봐 대답을 안 했어요. 근데 이젠 말할거예요. 안이하게 하지 말고, 상대한테 좋은 수가 있더라도 말해야겠어."

-그게 시비라면 왜 하필 이문열만 그런 시비에 휘말리는 걸까요.

"제가 지워져야 할 문화권력이 된 것 같습니다. 그건 나만 당한 게 아니에요. 이를테면 '안티 조선 운동'같은 경우는 조선일보를 신문권력으로 생각하는 것 같고. 최진실씨도 그 당시엔 문화권력으로 비판받았죠."

-소설 <선택>(1997) 이후 논란의 핵이 됐는데, 책 파는 데 도움이 좀 됐나요.

"책이 한 번 논쟁에 휘말리면 잘 팔리거나 안 팔리거나 둘 중 하나인데 저는 후자예요. 전혀 모르는 작가가 논쟁을 일으키면 '걔가 누구야? 책 속에 뭔가 있겠지'하면서 사 봐요. 근데 저는 신문에 다 나오니까 대충 읽고 나서 책을 다 읽었다고 생각하는 식이죠. <선택> <변경> <아가> 3개가 가장 안 팔렸어요. 40만부를 가장 안 팔렸다고 하면 좀 그런가.(웃음) <호모 엑세쿠탄스>도 논란부터 불거져서 '이거 틀렸구나'했는데 벌써 10만부 정도 나갔다 캅디다."

-시중에서 하는 말로 선생님을 '보수꼴통', 점잖게는 '보惻恣?이라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보수꼴통'은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제가 미국 버클리에 있는 동안 소설가 김연수가 같이 와 있었는데, 처음으로 만나 술을 마셨어요. 마시면서 제가 '니 내 실제 보니 어떻트나? P씨, C씨랑은 다르지?'물었어요. 그랬드니 김연수가 '그거나 그거나 다 그렇습니다'라는 거예요. 쇼크 먹었어요. 제 스스로도 조심한다고 했고, 난 속으로 그렇게까지 내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웃음)

-그 낙차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보수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과거를 인정하지 않고 미화하는 보수가 있어요. 그리고 과거를 미화하지는 않지만 앞선 사람들의 노력 중 인정할 건 인정하는 보수가 있죠. 저는 후잡니다. 어떤 건 과실이지 고의가 아니죠. 앞의 세계는 바보나 악당들이 만든 세계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나은 세계를 만들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 우리가 이만큼 사는 것도 앞서 살았던 사람들 덕택이라고 봐요. 보수도 이질적으로 분류가 가능한데, 지금은 다 혼재돼 있는 상황입니다. 낡고 큰 배에 너무 많은 걸 실었다는 거, 그게 우리 보수의 문제점입니다. 언제 옆구리가 터져뿌릴지 모르는데…."

-보수에도 급수가 있다는 말씀인 것 같은데, 이 정도면 같은 패거리로 묶여도 기분 나쁘지 않다 싶은 보수 인사가 있습니까? 복거일 선생님 정도요?

"복거일 선생님도 참 좋은데 난감할 때가 있어요. 식민지 근대화론은 잘 이해가 안 됩디다. 사실 그것도 더 자세히 봐야겠지만 영어 공용어론도 다소 과격한 것같고. 구체적으로 개인은 말하기 어려운데, 굳이 말한다면 송호근 유석춘 교수 정도?(웃음) 농담입니다. 난 참 멋있는 보수가 되고 싶은데…, 그게 어렵네요.

인터넷 문화가 강화시킨 것 같은데, 한 번 (보수로) 찍히면 씻겨지지 않아요. 우리 시대는 주홍글씨를 벗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뉴라이트 운동 쪽에서 저한테 참여 제의를 했을 때 거절했어요. 새로 시작하는 일에 내가 가진 '과격우파, 보수꼴통'이미지가 부담으로 작용할까봐서요."

-진보좌파에 대한 비판은 목소리 높여 하시면서 그런 극우보수에 대한 비판은 안 하시는 게 문제 아닙니까.

"내가 문단에 나왔을 때, 문단의 주류는 개발독재 보수 우파의 잘못을 지적하는 거였습니다. 개발독재의 죄악은 상당히 얘기했어요. 그걸 내가 지금 뒤따라 가면서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왜 이 얘기는 하고 저 얘기는 안 하냐고 계속 다그치는데, 나는 안 했지만 80년대 내내 얘기된 걸 90년대 와서 또 해야 하나 그런 기분이 들어요. 전두환 때 내가 말 안 한 거, 못한 거 부끄러워 하는 거 (여러분들은) 모르죠? 그게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에요, 그 부끄러워함이. 많이 부끄러웠어. 많이 부끄럽지 그거."

-<호모 엑세쿠탄스>를 쓰면서 줄 획수까지 맞춰 보수와 진보 모두를 욕했다고 하셨는데, 그런 계량적 비판은 작가로서의 자기검열 아닙니까.

"면피용으로 비율을 맞춘 셈이죠. 전 자기검열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지 않아요. 자기검열을 하지 않아 피해 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천하의 이문열도 자기검열을 할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란 말인데, 그런데도 굳이 정치 이야기를 계속 꺼내는 이유는 뭡니까.

"중견작가로서 경험한, 내 글쓰기의 공공성에 대한 인정이랄까. 사람들은 그 부분을 보지 않는 것 같아요. 절 우파 작가라고 하는데, 그렇게 보기엔 저와 함께 하는 작가가 아무도 없어요. 80년대 후반 이후 공식적인 우파 작가는 하나도 없습니다. 있으면 대보세요. 술집에선 나와 생각을 같이 하는 이들이 더러 있지만 공식적으론 없어요. 난 우리 문단이 그런 식(좌파 일색)으로 통일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갑자기 한 기자를 돌아보며) 지금 내 얼굴이 또 벌개요? 좀 흥분했나? 허허. 내가 내상을 입어서 그래요."

-<호모 엑세쿠탄스> 등 선생님의 최근 소설들은 너무 직정적입니다. 독자에게 상상의 여백을 주지 않고 직설적으로 작가 얘기만 삿대질하며 전달하는 식이에요.

"저도 그런 말 자주 들어요. 그런데 예전 소설도 정치ㆍ사회적인 것은 지금과 비슷한 대접을 받았어요. <영웅시대>는 운동권의 금서였고. <시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비슷했죠. 무기력한 지식인의 회색주의적 태도란 비판 많았습니다. <구로아리랑> <미로일지> 다 엄청 깨졌지. 전투적으로 글을 쓰는 것은 지금이나 그 때나 전혀 다르지 않아요. 다른 소설들이 대부분 철학 종교 고향 이야기들이라 그랬지."

-그럼 본격적으로 정치색을 드러낸 게 '세상이 한 쪽으로 치우치니까 나는 다른 쪽으로 간다' 그런 건가요?

"그것 때문에 내가 규정되고 공격 당하니까 오기가 생기기도 하면서 '맛 좀 봐라'하는 생각도 있고.(웃음) 이런 오기 외에도 보수와 진보, 좌와 우 등 세상의 모든 관념이라는 것이 어둠과 밝음처럼 짝 아닙니까? 정치사상과 세계 역시 그렇다고 봐요. 87년쯤인가, 어느날 돌아보니 오른쪽에 나만 앉아있두만. 아무도 없두만. 그때 나도 겁이 나고, 나도 절로 옮길까 생각도 해봤어요. 하지만 전 본능적으로 한 쪽으로 기울어지면 불안하고 겁이 나요. 나라도 이 자리에 앉아 있어야지 생각하는 거죠."

-그럼 앞으로 모두 오른쪽으로 간다면 혼자 왼쪽으로 움직이실 겁니까.

"글쎄요. 그럴 가능성은 없는 것 같아요."

-조금만 비굴해지면 행복할 수 있는데, 그런 유혹 느낀 적 없습니까.

"왜, 당연히 느끼죠. 어떤 마을에 120살 먹은 노인이 있는데 귀신에게도 나를 잡아가달라 하는 거에요. 이젠 사회관계를 나눌 사람이 다 죽고 자기 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것을 처음 들었을 때는 우화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부쩍 그 노인의 심정을 느껴요. 제가 젊은 세대와 (한글) 맞춤법도 같고 (비슷한) 교과서로 같은 내용을 배웠는데도 전혀 소통이 되지 않아요. 그런 마음이 들 때 겁이 나면서, 나를 버리고 그들에게 달려가 아첨이라도 해봐야지 하는 유혹이 생겨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행동이야 말로 정직하지 않고 두 번 욕을 보는 경우가 아닐까 생각해요."

-앞으로 우파 정권이 들어설 거란 예상이 높은데요, 기쁘시겠습니다.(웃음)

"올초 귀국후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한나라당 파벌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거에요. 대선 문제 하고. 내가 정치가도 아니고 점쟁이도 아니고…. 이렇습니다. 한나라당 내부 경쟁에는 관심 없습니다. 다만 내부싸움은 참 보기 꼴사납고요. 어느 쪽이든 웃기는 건데, 1년 뒤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데. 현재 여론조사 결과는 별 의미 없어요. 저는 사람들이 좋은 기억력으로 이성적으로 선택하리라곤 생각지 않아요.

개혁이 정치적 과제로 떠오른 게 벌써 20년 됐어요. 노태우씨도 헌법바꿔서 등장했고, 김영삼씨도 '개핵개핵'(웃음) 얼마나 했어요. 여기서 더 가면 다시 돌리지 못하는 게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우측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당위적으로 생각하지만, 지금으로선 난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보여. 그런데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고, 김칫국을 마시고 있더라고. 그거 참 보기 싫고."

-개헌 논란에 대해서는요.

"고약한 시비가 시작되는구나 했어요. 원칙에는 다 동의하는데 '언제 어떻게'가 되면 각각 다르죠. 왜 지금인가에 대해선 잘 모르겠어요."

-2004년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으로 참여하신 게 작가 이문열을 정치적 맥락에서 소비하도록 만들었는데요.

"양면성이 있어요. 솔직히 공천심사에 대해 안이하게 생각했어요. 그 땐 정치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정치 중에서도 아주 핵심적인 행동이었어요, 하하. 손해도 있지만 소득도 있었는데, 정치의 핵심을 볼 수 있었다는 겁니다. 안심과 한심을 경험했죠."

-대선 때 다시 그런 제안이 들어온다면요.

"다신 안 할 겁니다. 너무 소모적이에요. 그리고 정치가 문학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을 망친 게 문제죠. 지난 6~7년 간 작가로서 생산적인 활동을 하나도 못했어요. 문학성이 아닌 생산성이 떨어진 거죠."

-그럼 이번 대선 때는 작가 이문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겁니까.

"만약 지금 이대로 5년 더 흘러갈 때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걱정이 되긴 합니다. 하지만, 이걸 내가 과연 거들어서 될 일인가, 생각이 달라졌어요. 예전엔 거들 건 거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좀 그래요. 그거 아일지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고, 한 표라도 많이 얻어서 사람들이 결정하면 어쩔 거냐, 그 뒤에 딴 소리 하는 게 비겁한 거 아니냐, 그런 기분이 있어요. 그런데 모르겠어요.

만약 내가 할 수 있는 게 요만큼 있는데 그걸 안 해가지고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가서 '에이, 내가 그 때 할 건데' 하고 후회하는 거. 그 둘 중의 어느 것이 더 클까 고민은 하지만, 글쎄요, 일단 (미국으로) 나가겠어요. 나가서 한 여섯달, 일곱달 더 고민해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해보고."

-단군 이래 가장 많은 2,700만부의 책을 판 작가가 왜 <삼국지> <초한지> 번역 같은 데 매달립니까.

"우린 궁핍한 시대를 겪었어요. 전업작가로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에요. 당시 최인호 선배 정도나 겨우 살 수 있을까? 제 일생의 부업으로 삼고 시작한 게 <삼국지> 번역입니다. <삼국지>의 작가는 제가 아니에요. 이문열 소설 중 뭐가 제일 좋냐고 물으면 <삼국지>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런 말 들으면 전 펄쩍 뜁니다. 황당해요. <초한지>는 좀 다른 것이, 번역한 것이기라기보다 내가 꾸민 거에요. 연의(演義)한 거죠. 그래서 <초한지>에는 작(作)이란 말을 쓸 겁니다."

-연애소설, 성장소설의 작?이문열이 그립습니다.

"작가도 사람인데, 그 자료가 무한정하지 않죠. 이번에 (정치적인 작품에) 상당히 많이 소진했기 때문에 다른 작품을 쓰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겁니다. 열정에는 우선순위가 있기 때문에요. <시인> <변경> <호모 엑세쿠탄스>로 내가 구상한 것들을 쏟아냈어요. 아직 쏟아내지 않은 것에는 연애 얘기가 있는데, 성애의 대상으로서의 여인과의 이별에 대해 잘 된 소설을 쓰고 싶어요.

마지막 여자를 보내는 순간, 한 남자가 일생 동안 여성성과 접하고 감정의 축적을 쌓고 하는 것들을 써내고 싶거든요. 도대체 남자가 한 평생 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지나가는지 통계를 곁들여 20세기 후반 풍속도도 함께 그려내면서요. <여인들을 보내며>라고 제목도 지어 놨습니다."

-사모님의 검열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페미니스트들과 완전히 이별할지도 모르는데….(일동 웃음)

-작품 속에 봉?표현이 지나치게 절제돼 있는데, 이유가 뭔가요.

"저는 절제하는 것으로 가려고요. 김주영 선생이 나만 보면 '여관에 가면 잠을 자야지 왜 글을 쓰고 철학을 하냐'고 혼내요.(웃음) 묘사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있고, 그것에 대해 나도 식상했던 때였죠. <영자의 전성시대> <별들의 고향>이 유행하던 시절이었거든요."

-작가 이문열에 대한 기대에는 한 시대의 교양을 대표하는 소설에 대한 기대도 있는데요.

"그래서 내가 천박한 교양상업주의라고 직사게 욕먹은 거 아닙니까.(웃음) 그런데 나중에 칼이 돼서 돌아오기도 해요. 천박한 교양서라든가….(웃음) 얼마 전 보도를 보니 '우리 시대에 과평가 된 작가 이문열'이라고 했는데, 평단이 결코 절 과평가해 준 적 없습니다. 85년 이후 이문열에 대한 평론 가운데 저를 인정하는 것과 까고 부정하는 것은 2대8 정도예요."

-부친이 월북하셨는데, 그게 사상 형성에 영향을 주었습니까.

"솔직히 말해 아버지와 관련해서는 20대 초에 끝났어요. 오이디푸스 이야기가 비극적인 얘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는 아버지 살해를 다룬 것인데, 저의 아버지 살해는 일찍 온 편이죠. 그 후로 그런 사실에 묻혀 사는 게 이상하게 생각 되더라고요. 독립한 셈이죠. 그럼에도 아버지에 대한 동물적인 감정은 오래 가요. 친북, 반북과 연관짓자면 아버지의 삶이 보여준 실제 결과가 제 반북 정서를 자극했을 거에요.

당신(아버지)은 남한에서 많은 것을 버리고 갔어요. 좋은 집안, 재산, 일본유학 등 모든 것을 버리고 갔는데 15년간 협동농장에 있었던 거에요. 그것을 제가 서른 넘어서 알았는데, '우리(가족)가 남한에서 서럽게 살았는데 당신이라도 거기서 잘 살아야지'란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그 사실로 원시적 의미에서 (북한)을 용서할 수 없는 집단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제가 여기서 털어놓지 못하는 '본능적 공포' '미래에 대한 비관' 같은 게 있어요. 숨은 공포죠. 지금 내가 '과거를 털어버리겠다. 비정치적, 무정치적이 되겠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불가회성'(不可回性) 때문입니다. 그 방향으로 가면 주워담을 수 없는 것이 있어요. 요새 시청 앞에서 70, 80 드신 노인들이 정부 비판을 합니다. 언론의 카메라가 이상하게 잡으면 엄청나게 희극적으로 보여요. 그런데 저는 그 사실이 너무 슬퍼요. 숙연해 지죠. 절대 희극이 아니에요."

-진보 상업주의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어디나 있어요. 미국에서도 똑똑하게 튀려면 진보 쪽으로 튀어야지 네오콘 하고 자빠지면 이건 확 가는 거에요.(일동 폭소) 저만 그런 게 아입니다."

-2년간 미국 하버드대학에 체류하실 예정인데, 영어는 잘 들리십니까?

"하나도 안 들려요. 아무리 먼 데서 한 마디만 들려도 한국말은 쏙쏙 들어오는데 영어는 안 돼요. 그래서 미국에 있는 동안 멜빌과 나다니엘 호손을 좀 독파하고 올라고 합니다. 미제 주자학도 좀 배우고요."

-이문열은 주자학도 미제로 배운다고 욕 먹는 거 아닙니까.

"그랄란가? (웃음) 오늘 이래 말하고 또 당하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되는데, 너무 많이 당하게는 하지 마세요."

■ 이문열-고종석 '취중격론 벌이다'

이문열씨는 올해 초 귀국하면서 한국에 가면 가장 먼저 본보의 고종석 객원논설위원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고 위원은 2002년 <정말 하기 싫은 ‘전라도’ 이야기>, 2004년 <당신이 바로 하류 지식인이다>라는 칼럼에서 이문열씨를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전라도 발언’에 대해 해명하고, 쌓인 앙금을 풀고 싶다는 이씨의 요청으로 고 위원과의 만남이 100°C 인터뷰 도중 성사됐다. 치열한 ‘취중격론’이 오갔음은 물론이다.

고종석 “저한테 이문열이라는 작가가 우익작가라는 건 사실 아무 문제가 안 돼요. 그건 이념이니까. 문제는 언제부턴가 이 작가가 자기의 욕망 때문에 우익의 기품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건데, 전 그게 안타까워요. 우익들은 품위가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에 아무리 짜증이 나도 돌려서 얘기하지 자기 몸 홀딱 드러내면서 막말을 하진 않아요.”

이문열 “내가 하지 않은 말에 대해 논란이 붙었을 때, 고형(兄) 쯤은 이해할 줄 알았는데 섭섭합디다. 나는 문단에 나올 때부터 대한민국 작가였지, 영남작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화가 나서 그런 말을 할 사람이면 오늘날의 이문열은 없습니다. 내도 낼모레면 60인데, 한없이 순해지고 착해져도 별로 남은 세월이 없는데 말이죠, 이렇게 분노와 원한을 안고 늙는다는 게 형벌이에요.”

고 “말씀은 늘 이렇게 우아하고 온화하신데, 글엔 늘 칼이 있어요. 말씀하시는 대로만 쓰면 될 텐데 글이 너무 표독스러워요.”

이 “그게 내뿐만 아이고, 문인들이 원래 그 전날 같이 술 먹고, 그 다음날 글로 잡을 땐 완전히 개 잡듯 합니다. 그게 말과 다른 글의 속성이죠. 내가 가진 가장 강력하고 힘 있는 것은 다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고 “그게 아니라 글에서 가장 나쁜 부분이 드러나는 건지도 몰라요. 말로 할 때는 인격이라는 게 있으니까 드러나지 않는데, 평소 감정의 가장 뾰족한 부분이 글에서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이 “다른 건 몰라도 ‘지역주의’카는 거는 내한테 실리가 없어요. 간곡하게 부탁하는데 그건 아이라는 거, 그건 좀 알아주세요.”

고 “제가 만약에 선생님처럼 월북한 아버님 때문에 성장기가 힘들고 그랬다면 전라도 사람한테 환장할 거 같아요. 아, 이 사람도 불쌍하고 저 사람도 불쌍하구나. 근데 선생님은 이상하게 ‘아버지 때문에 인생 이렇게 됐네. 이거 다 복구해야지’ 하면서 어느 때부턴가 굉장히 공격적으로 됐어요. 소수자들 입장을 좀 배려해주세요.”

● 이문열 약력

1948년 서울 출생. 경북 영양 등지에서 성장 / 서울대 국어교육과 중퇴

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새하곡> 당선 등단

94년~97년 세종대 국문과 교수

98년~현재 부악문원 대표

2003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

▦소설집 <사람의 아들>(1979) <젊은 날의 초상>(1982) <금시조>(1983) <칼레파 타 칼라>(1985) <필론의 돼지>(1989), 장편 <황제를 위하여>(1982) <영웅시대>(1984)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 <추락하는 痼?날개가 있다>(1988) <시인>(1991), 대하소설 <변경>(1998) <대륙의 한>(1995), 평역소설 <삼국지>(1988) <수호지>(1994), 산문집 <사색>(1991) <시대와의 불화>(1992) <신들메를 고쳐 매며>(2004)

▦오늘의 작가상(1979) 동인문학상(1982) 이상문학상(1987) 현대문학상(1992)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92)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92) 21세기문학상(1998) 호암예술상(1999)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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