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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서 두번 우는 新기러기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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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서 두번 우는 新기러기아빠

입력
2007.01.2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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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국내 재벌기업의 일본 도쿄(東京) 주재원 L(45)씨는 최근 가족들을 미국 보스턴으로 보냈다. 아내와 중학교 1학년 아들, 초등학교 4학년 딸 등 4명과 말 그대로 ‘생이별’ 했다. “일본에서는 영어 공부를 시킬 곳이 마땅치 않다”는 아내의 성화가 발단이었다. 3개월 동안 고민하다 결국 아내를 따랐다. L씨는 “일본에서 기러기 아빠가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며 “아이들 교육이 더 중요한 것 같아 보내긴 했는데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씁쓸해 했다.

#중국에서

최근 중국 베이징(北京)에 출장 갔던 변호사 P(46)씨는 친구 K씨를 위로해주느라 하룻밤을 꼬박 세웠다. 베이징의 한 대학 교환교수인 K씨가 혼자라는 사실에 자리를 뜰 수 없었다고 했다. 사연은 간단했다. 지난해 3월 중국에 함께 온 초등 5학년 딸과 아내가 지난달 초 캐나다로 가는 바람에 K씨는 졸지에 싱글 아닌 싱글이 됐다. 아이의 영어 공부를 위한 여건이 좋지 않아 신경이 쓰이던 차에 아내가 “캐나다로 가야겠다”며 기름을 부었다.

‘해외 체류 기러기 아빠’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자신만 해외 근무지에 남고 가족은 다시 다른 나라로 보내는 일종의 ‘해외 이산’ 이다. 자녀의 영어교육을 위해 아버지가 ‘홀로 되기’를 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을 보여주는 신세태이기도 하다.

19일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직장에 다니는 아버지의 해외 발령으로 외국으로 나간 ‘파견동행’ 학생은 연간 8,000명이 훨씬 넘는다. 2003년 8,823명, 2004년 8,513명이 파견동행 조기유학생이다.

교육부는 파견동행 유학생 중 다시 다른 나라로 간 학생수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출국학생의 영어권 나라 재유학 집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외 현지와 강남 사교육 시장에서는 영어권이 아닌 나라에서 재유학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강남구 K유학원 관계자는 “남편을 따라 일본으로 간 어머니들이 아이의 미국 유학 방법을 의뢰하는 문의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강남 Y유학원은 지난 한해에만 일본 중국 태국 등 아시아 나라 주재원 교환교수 등 자녀 20여명을 미국과 캐나다 등으로 유학을 알선했다.

해외 기러기 아빠의 등장은 현실적인 이유가 크다. 영어를 가르칠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 상당수 주재원이나 교환교수, 공공기관 공무원 등이 아이를 외국인(국제) 학교에 보내고 있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 가족들을 미국으로 보낸 일본 오사카 의 상사 주재원 K(45)씨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따로 영어공부를 할 곳이 없다”며 “비용이 들더라도 외국어고 진학을 목표로 하는 아이 장래를 위해 영어권 나라로 다시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K씨는 매월 미국으로 월급 전액과 주재원 수당 일부를 송금하고 있다.

이들은 경제적 부담 외에도 이산에 따른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국내 기러기 아빠들이 겪는 외로움과 정서 불안 등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오성삼 건국대 교육대학원장은 “정부가 파견동행을 포함한 해외 조기유학생 실태를 조사할 때가 됐다”며 “특히 해외 기러기 아빠는 국제 사회에서 가족해체의 모델로 여겨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진각 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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