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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2차세계대전사 "모든 전쟁을 끝낼 전쟁이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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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2차세계대전사 "모든 전쟁을 끝낼 전쟁이였는데…"

입력
2007.01.2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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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전쟁사학자 英 존 키건의 수작흥미진진한 첩보전 등 파멸적 전쟁 다각적 분석존 키건 지음ㆍ류한수 옮김 / 청어람미디어 발행ㆍ912쪽ㆍ4만원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존 키건의 방대한 저서 <2차세계대전사>가 번역 출간됐다. 현대사의 블랙홀 같은 이 대사건의 전모와 이면, 그리고 세부를 아울러 살펴볼 수 있는, 요컨대 ‘퍼스펙티브’와 ‘디테일’이 조화를 이룬, 드문 저서로 평가되는 책이다.

현대의 가장 독창적인 전쟁사학자로 꼽히는 저자는 2차 대전의 어지러운 풍경을 3개의 선분으로 구획한다. 전쟁 발발과 확전의 전반기(1941~43년)와, 미드웨이 해전 등을 기점으로 전세가 뒤집히고 종전으로 이어지는 후반기(43~45년)의 시간적 구획, 그리고 서부전선, 동부전선, 태평양의 공간적 구획이다. 또 전선의 이동에 구애되지 않고 전쟁 성격의 변곡점을 이룬 크레타 공중전, 미드웨이 해전, 팔레즈 전차전, 베를린 시가전, 오키나와 상륙전 등 주요 전투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조망의 시선을 정돈한다.

키건 전쟁사의 매력은 독특한 서술 방식과 폭 넓은 사료의 활용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는 군통수권자나 야전 장군의 전쟁 기획과 전략 일변도의 전쟁사, 개별 전투의 극적인 전개에 현혹되지 않는다. 대신 전장에서 멀찍이 물러선 채 전장과 교호하는 정치 외교 사회 문화 심리의 양상들을 조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노르망디 상륙전의 경우에서처럼 살육전의 한 복판으로 뛰어들어 참전 용사들의 육성을(회고록 등을 통해) 들려주기도 한다. 전술ㆍ전략 지도와 함께 펼쳐지는 현장감 있는 전투 묘사는 영상의 이미지에 가려져있던 전쟁의 새로운 진실을 엿보게 한다.

무엇보다 그의 전쟁사는 흥미진진하다. 26장 <무장저항과 첩보활동> 의 장은 바르샤바 봉기나 동유럽 국가 내부의 파르티잔 활동, 연합국과 개전국 간의 보이지 않는 전쟁 ‘정보ㆍ첩보전’의 경과를 소개한다. 가령 독일 ‘U-보트’ 신화의 열쇠는 영국 해군의 ‘3번 암호’(주로 대서양 횡단 호송선단의 이동 암호로 쓰였음)를 거의 실시간으로 해독한 독일 해군 감청반이 쥐고 있었고, 미드웨이 해전의 승패는 일본 해군기구의 암호(JN25b)와 외교기구 암호(퍼플)를 해독해낸 미국 첩보조직 ‘매직’에 의해 결정됐다고 저자는 밝힌다.

이 같은 분석을 토대로 저자는, 정치적 의미와 대중의 상상력과는 상관없이,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 등 나치 치하 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시민들의 “무장 저항이 독일 국방군의 살갗에 앉은 각다귀였을지 모르지만, 첩보활동은 독일 국방군의 생명체계의 힘을 앗아가는 세균이었다”고 평가한다.

책은 19세기 산업혁명과 부르주아 혁명이 20세기의 이 파멸적 전쟁의 씨앗을 어떻게 키워왔는지를 다각적으로 분석한 프롤로그와 전후처리의 과정을 그린 에필로그를 달고 있다. 또 생소한 인물이나 배경적 사건들에 대해 번역자인 젊은 역사학자 류한수(서울대 인문학연구소 연구원)씨가 달아 둔 600여 개의 주석도 이 거장의 전쟁사를 충실히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번역자가 역자 후기에 언급했듯이, 귀족적 보수주의적 취향의 이 영국인 저자는 동부전선이나 태평양전선보다는 서부전선에, 소련이나 일본보다는 영국과 미국에 치우쳐 기술하고 있다. 또 전승국이면서도 최대 피해국인 소련 ‘붉은 군대’에 대한 편파적인 반감이나 처칠에 대한 편애(저자는 처칠 전기를 쓴 적이 있다)도 거슬리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전사가 지녀야 할 정밀함과 스펙터클, 전쟁 일반의 문명사적 의미와 2차대전의 현대사적 의미에 있어 여전히 독보적이다. 한반도의 운명과 팔레스타인 분쟁, 지금의 이라크 전쟁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2차대전의 현재적 의미, 그리고 “모든 전쟁을 끝낼 전쟁”이라는 저자의 희망적 분석도 무색하게 온존하고 있는 새로운 전쟁의 만성적 위협 속에서 이 책의 가치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바래지 않을 것이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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