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막을 내린 극단 명품극단의 ‘고골 3부작’은 러시아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연극학도들의 성실한 연구공연이자 도전적인 출사표로 느껴졌다.(지난해 9월 같은 작품이 공연됐으나 당시 출연진의 건강 악화로 2부까지만 공연되고 중도에 막을 내려야 했던 아쉬움이 있었다.)
이번에 3부에 해당하는 <행복한 죽음> 까지 보고 나니, 별난 이름의 이 극단이 러시아 연극 전통에 대해 갖고 있는 매혹과 탐구심을 짙게 느낄 수 있다. 원작의 문화적 배경에 해당하는 우크라이나 지역의 토속적 색채와 질감을 재현하고, 러시아의 민속악과 정서를 충실히 옮겨놓은 고골 3부작은 <비이> <광인 일기> <행복한 죽음> (원제 <옛 기질의 지주> ) 등 세 단편에서 줄기를 취해 왔다. 옛> 행복한> 광인> 비이> 행복한>
고골의 소설들은 본질적 속성상 소극(笑劇)으로의 장르 전환이 용이하다. <외투> 와 <코> 는 이미 2005 2인극 페스티발에서 연출가 박근형과 반무섭에 의해 공연됐다. 해외 연극제 출품 목록에서도 고골의 각색물은 간간이 눈에 띈다. 코> 외투>
고골에 의하면 인간은 그다지 품위 있거나 정신적인 존재가 아니다. 상황과 사회적 환경에 짓눌려 있으며, 게걸스레 먹고, 배설하고, 침 튀기고, 땀에 절어 번질거리고, 겁에 질려 다리나 떨어대면서도 한편으론 발정이 나 날뛰는 존재들이다. 연극 고골 3부작은 이러한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소극적 본질을 취하는 한편 소극에 걸맞는 곡예적 연기, 인형극, 광대 연행 등 다양한 쇼 비즈니스를 선보인다.
이는 신체적 기량을 갖춘 배우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희극 연기에 자질을 보인 주용필, 손경숙과 일인극 <광인 일기> 를 그로테스크한 개성으로 끌고 간 조하석 등 눈여겨볼만한 배우들이 이 극단에는 포진해 있다. 광인>
문화에도 본격 펌프질 직전의 마중물이 있다. 우리 삶의 마른 대지를 적시기 위한 예술가들의 쉼 없는 펌프질을 생각해 본다. 이제 이 땅에 돌아와 연극을 막 시작하려는 이 젊은이들에게 러시아 연극은 우리 연극의 수원지에 숨은 물을 퍼 올리기 위한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
그 동안 선학들이 걸어온 러시아 문학을 향한 흠모와 근대 연극의 심리적 사실주의 연기 방법론에 거리를 두고, 메이어홀드의 신체 역학과도 다르며, 러시아의 민속 문화와 대중극 전통의 원형을 탐구하는 듯 보이는 이 극단의 독자적 방향성이 다음엔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들려줄까. ‘소극’과 ‘광대극’이라는 만국 공통어 안에서 극단의 방향성을 잘 수렴해낸 고골 3부작 이후가 궁금해진다.
극작ㆍ평론가 장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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