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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통합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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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통합적 사고

입력
2007.01.2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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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 서울대 이공계 1학년 학생들이 수강하는 화학 기말고사에 북한의 핵실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공기 중 제논(xenon)을 조사하는 이유를 적으라고 했더니 핵실험을 하면 제논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몇 자 적은 답이 적지 않게 나왔다.

틀린 대답은 아니지만 어떻게 서울대 학생이 이처럼 일차원적 답을 할 수 있는지 허탈한 심경을 지울 수 없었다. 평소 주변의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찾아 공부하는 훈련이 안 되어 있으니 교과서에서 접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이 없는 것이다.

● 서울대 1년생들의 일차원적 답안

내가 작년 11월 17일자 '아침을 열며'에서 '제논과 제노포비아'라는 제목으로 핵실험과 제논의 관계에 대해 간략히 언급한 바 있지만 이 일에도 다양한 과학의 원리들이 흥미롭게 연결되어 있다. 우선 제논은 핵분열의 원료인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의 절반 정도 크기이다.

그러니까 제논이 나왔다는 것은 크고 무거운 핵이 분열했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보통의 공기에는 제논이 거의 들어 있지 않다. 따라서 동해안 휴전선 부근에서 제논이 검출되었다면 그것은 함경도 어디에서 핵실험을 했다는 간접적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제논이 화학적 반응성이 없는 비활성기체라는 점이다. 반응성이 높아 핵실험 지역에서 다른 물질과 빠르게 반응한다면 휴전선까지 올 수 없을 것이다. 또 아무리 반응성이 낮다 해도 기체가 아니라 고체나 액체라면 백 킬로미터를 날아오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핵분열의 결과로 얻어진 제논은 방사능을 띠거나 특별한 질량 패턴을 나타내기 때문에 공기 중에 극미량이 들어있어도 특수 장비로 검출이 가능하다. 관중석에 붉은 악마가 몇 명만 있어도 금방 알아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복합적인 문제에 단순히 제논이 발생하니까라고 한다면 좋은 답이 될 수 없다.

정초에 EBS 교육방송에서 김신일 교육부총리와 김미화씨의 대담 프로그램을 보았다. 어느 학부모가 제기한 입시 논술의 문제점에 대해 김 부총리는 교육적으로 필요한 일이라면 어려움이 있더라도 지혜를 모아 추진해야 하지 않겠냐는 취지의 말을 했고, 일선 교사들이 힘을 합해 성공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사례도 소개되었다.

특히 2008년 입시부터는 자연계에도 통합 논술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될 전망인데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염려가 많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고등학교에서 과학의 전 과목을 골고루 이수할 때와 달리 지금은 수능 준비를 위해서 본인이 선택한 과목에만 매달려 있으니 학교 공부 만으로는 자연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 길러질 수 없는 것이다.

● 고교 교육은 인내심 훈련이 아니다

그러나 요즘은 생명과학을 잘 하려면 물리와 화학을 알아야 하고, 수학과 기초과학의 실력이 부족하면 공대 과목을 따라가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대학 입장에서는 대학 교육에 적합한 학생을 선발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마땅하고, 고등학교 교육을 그런 방향으로 유도할 필요도 있다.

요즘 대학 신입생들은 대학 입시 준비로 수능에서 정답을 찾는 반복 훈련에 몰두하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인내심을 기르는 훈련을 받았다는 이상의 기억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는 대학 공부를 제대로 할 수도 없거니와 변해가는 요즘 세상에서 사회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도 어렵다. 이런 고등학교 교육을 탈피하려면 평소에 다양하게 독서하고 다각적으로 사고, 토론하는 경험을 쌓도록 해야 한다. 자연계 통합 논술이 바람직한 고등학교 과학교육의 방향을 제시하는 방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김희준ㆍ서울대 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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