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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기억-제3제국의 중심에서 '나는 히틀러의 건축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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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기억-제3제국의 중심에서 '나는 히틀러의 건축가였다'

입력
2007.01.2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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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슈페어 지음ㆍ김기영 옮김 / 마티 발행ㆍ957쪽ㆍ3만7,000원

“대중에게는 극장은 물론이고, 극장 밖에서의 환상도 필요하다.”

아돌프 히틀러는 이미지 조작이 대중을 선동하고 그 영혼을 포획하는 데 동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장치임을 안 파시스트였다. 그런 그에게 ‘극장’의 레니 리펜슈탈(영화배우 겸 나치의 천재적 영화감독)이 있었다면, 극장 바깥에는 알베르트 슈페어(1905~1981)가 있었다. 그는 히틀러와 제3제국의 망상을 좇아 총통 청사와 괴링 관저, 뉘른베르크 스타디움을 짓고 제3제국의 건축과 도시계획 전체를 연출한 나치의 건축가이자 제국 내각의 최연소 각료(군수장관)를 지낸 히틀러의 측근이자 전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각료 가운데 유일하게 교수형이 아닌 20년형을 선고 받은 1급 전범이다. 그가 슈판다우 형무소에서 편지와 일기 업무일지 등을 바탕으로 쓴 회고록 <기억> 이 출간됐다.

“오랜 세월 후 슈판다우에서 나는 스스로 인간의 가장 고귀한 특권, 즉 자율성을 저버린 사람들에 대한 에른스트 카시러의 글을 읽었다. 나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91쪽)

책은 ‘나’ 슈페어의 대학생활과 나치당 입당, 히틀러와의 다양한 에피소드와 핵심 참모들의 됨됨이, 전시 내각활동, 재판 과정의 경험, 반성적 사유들을 촘촘히 펼쳐놓고 있다. 히틀러의 칭찬에 고무된 28세의 무명 건축가인 ‘나’는 “위대한 건물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면, 파우스트처럼 영혼이라도 팔았을 것이다. 나는 나의 메피스토펠레스를 찾은 것이다.”(63쪽)

권력에 영혼을 판 지식인이 제국의 전쟁기계로 전락하는 과정은, 너무 허망해서 두렵기까지 하다. “일단 선택을 하고 나면 우리는 비판적 사고에 스위치를 내리고 자신을 정해진 직업에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즐겁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사고를 회피하는 성향으로 인해 나는 균형감각을 잃었다.”(44~46쪽)

나치 핵심부의 사실상 유일한 증언이라는 점에서 <기억> 은 일반 독자들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종전 직전 히틀러의 마지막 광기에 맞서 독일의 문화유산과 산업시설을 보호하려고 노력했던 슈페어는 출감후 언론인 출신 역사가 요아힘 페스트 등의 히틀러 연구를 돕기도 했다. 자기반성과 자기변호의 줄타기라는 비판에 대해 슈페어는 “나는 단지 과거를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경고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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