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를 찾던 다람쥐와 토끼가 그대로 '동태'가 된다. 말을 타던 기수가 내려오려다 땀이 밴 엉덩이가 안장에 얼어붙어 곤욕을 치른다. 몇 시간 만에 하천의 얼음 두께가 15~33㎝로 불어난다.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녹아 내린다. 히말라야의 빙벽이 사라져 등산가들이 아이스하켄을 벗어 던진다.
북극곰들이 녹아 분리된 얼음섬에 고립돼 굶주림에 쓰러진다. 빙하기를 연상케 하는 앞의 세 상황은 1836년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다. 지구온난화를 경고하는 뒤의 세가지 모습은 다큐멘터리 영화 'An Inconvenient Truth'의 내용들이다.
■ 지난해 '불편한 진실'로 번역돼 우리나라에서도 잠시 상영됐던 이 영화는 환경운동가인 미국의 엘 고어 전 부통령의 강연 형태로 이뤄졌다. 지구촌 공장굴뚝에서 뿜어대는 이산화탄소 연기들이 허리케인과 태풍, 핵폭발의 모습으로 변하는 상징들이 인상 깊다.
사실적 자료를 근거로 '10년 후의 불편한 미래'를 경고하고 있다. 2004년엔 비슷한 영화 '투모로우'(원제는 The Day After Tomorrow)가 관심을 모았다. 난방시스템 역할을 하는 해양조류가 지구온난화로 역할을 정지하면서 빙하기가 시작된다는 픽션이지만 상당히 과학적이다.
■ 17일 미국 시카고대학의 지구종말시계(Doomsday Clock)가 '5분 전'으로 조정됐다. 9ㆍ11사태로 2분이 앞당겨져 '7분 전'이 됐다가 다시 지구종말에 2분 더 다가섰다. 1947년 이래 18번 수정되면서 전쟁과 평화, 핵실험과 군축이 주 원인이었으나 처음으로 제3의 요인이 발생한 것이다.
대학측은 북한ㆍ이란의 핵무기 개발과 함께 지구온난화를 중요한 이유로 꼽으며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난 65만년 동안 가장 높다"고 밝혔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테러는 수백, 수천명을 죽이지만 지구온난화는 수백만명을 죽인다"고 말했다.
■ 달력을 보지 않고서야 오늘(20일)이 대한(大寒)인 줄 어떻게 알겠는가. 지난 6일의 '반짝 소한(小寒)'이 겨울추위의 전부였던 듯 싶다. 이상 온난은 북반구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어서 호주에선 섭씨50도의 폭염으로 야외운동 주의보가 발령될 정도다.
미국은 "Where is the winter?"란 TV프로에서 실종된 겨울을 찾고 있고, 우리도 "겨울이 겨울잠?(한국일보 19일자 9면)" 등의 보도가 적지 않다. 잠시의 이상기후로 여기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알고싶지 않고, 상상하기 싫은, 불편한 진실'에 자꾸 뒷골이 당긴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