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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산문에 비친 '쌩얼'… 아련한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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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산문에 비친 '쌩얼'… 아련한 시간들

입력
2007.01.2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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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강은 추억을 노래하고 송재학은 풍경을 진찰했네

화자라는 가면을 벗은 저자들의 맨얼굴. 가공하지 않아 더 본연한 그들의 문학적 내피(內皮). 저자와 독자를 자연인끼리의 사적 관계로 맺어주는 내밀한 글쓰기가 아마도 산문집의 매력일 것이다. 소위 ‘쌩얼’의 시대, 거기엔 작가들의 ‘쌩얼’이 있다.

소설가 한 강(37)씨와 시인 송재학(52)씨가 나란히 산문집을 냈다. 소설가는 제 삶을 가로지른 노래의 추억들을 나지막히 읊조렸고, 치과의사 시인은 데뷔 20년 만에 처음으로 삶의 풍경들을 조심스레 청진(聽診)했다. 그들의 맨얼굴, 맨목소리가 읽는 이를 고요케 한다.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한 강 지음 / 비채 발행ㆍ180쪽ㆍ1만1,000원

한씨는 이 책을 통해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의 반대편에 섰다. 이제 우리의 기억을 환기하는 가장 강력한 감각은 미각이 아니라 청각이다. 프루스트의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를 먹으며 어린 시절의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만, 한 강의 시대에 그 역할은 이제 대중음악이 맡는다. “어느 저녁 문득 오래 전의 노래가 혀끝에 매달려 가슴이 먹먹해지거나, 베일 듯 아파오거나, 따스하게 덥혀져본 적이 있는지. 바로 그 노래의 힘으로, 오래 잊었던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지”라고 묻는 작가의 이 자문은 또래들의 절대적인 맞장구를 받을 듯하다.

책은 기억에 새겨진 노래 22곡에 얽힌 추억을 담담하게 풀어놓은 2부와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들의 사연을 고백한 3부가 주축이다. 동물원의 <혜화동> 이,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 가, 김광석이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이 생의 갈피갈피에 끼워진 추억의 책갈피가 돼 그를 과거로 끌어들인다. 젊은 어머니가 수줍게 부르던 <짝사랑> 이나 소설가 아버지(한승원씨)가 나무 등걸 같은 목소리로 부르던 <황성옛터> 는 듣기만 해도 눈물겹게 부모의 영상을 망막에 새긴다.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싶다는 어린 딸의 소원을 가난 때문에 못 들어준 그의 부모는 피아노 같은 덴 관심 없어진 중3으로 성장한 딸에게 뒤늦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우리 한을 풀어달라”는 부모의 눈물 때문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이후 틈틈이 노래를 만들어 불러왔고, 이번 산문집에 자신이 만든 노래를 직접 불러 녹음한 CD를 부록으로 덧붙였다.

어쩌면 이번 책은 산문집이 부록이고 음반이 메인인지도 모른다. 부끄러워서 그랬을 것이다. 울림과 떨림이 많은 가성으로 기교 없이 처연하게 부르는 그의 슬픈 노래가 뜻밖에도 참 좋다. 듣고 있으면 슬그머니 ‘내 생의 BGM(배경음악)은 무엇이었나’ 괜한 상념 속으로 빠져든다.

풍경의 비밀

송재학 지음 / 랜덤하우스 발행ㆍ272쪽ㆍ1만원

산문으로 번역하기 어려운 모호성의 이미지를 구축해온 송재학 시인의 이 산문집은 스스로 붙인 시의 주석집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내 시의 본질이란 풍경과 사람의 이미지란 걸 이 글들이 서툴게나마 말해준다”고 자서에 밝힌 것처럼, 책은 해석의 단서들로 빼곡하다. 특히 3장 <시란 나에게 어떤 운명을 준비하는가> 의 글들이 그렇다. 젊은 날 미문(美文)에의 집착, 정현종 이성복 등 동경했던 시인들의 시를 베껴쓰던 습작기 등 문청 시절의 추억을 담은 이 아름다운 글들은 하나의 독립된 시론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일상의 축적으로서의 생애를 ‘시의 면도날’로 해부한 1부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나이> 와 직접 발로 밟았던 이 땅의 구석구석을 글로 인화한 2부 <풍경의 비밀> 은 무심코 스쳐 가는 평범한 곳의 놀라움을 발견해내는 그의 ‘시인본능’을 보여준다. “이끼에 가까운 지의류의 한 종류는 자라는 속도가 느려, 에너지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끼가 껴안은 시간의 톱니바퀴도 당연하게 녹이 습니다. 녹슨 시간의 틈새에서 찾아낸 무색 무미 무취의 물방울 하나를 삼킬까 말까 망설임에 생애의 대부분을 소모한다는 이끼의 선택이라면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시간을 녹슬게 하는 방법> (85쪽)을 이 정도로 설명한다면, 그를 시인으로 태어난 자라 명명해도 과하지 않지 않을까.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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