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성탄절 아침 경북 영천역. 기차에서 내린 스무살 청년은 서둘러 근처 군 부대로 향했다. 입대한 선배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선배는 국제기능올림픽 참가를 앞둔 그를 지도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선배의 외출을 신청했다.
영문도 모르는 선배를 이끌고 그가 간 곳은 근처 여인숙. 청년은 낡은 가방에서 자신이 그린 20장이 넘는 기계설계도면과 컴퍼스 등 제도 도구들이 쏟아냈다. 안부를 물을 새도 없이 두 사람은 도면을 훑으며 의견을 나눴다. 점심도 거른 채 10시간이 넘게 도면과 씨름했다. 이후에도 청년은 3차례 더 선배를 외출로 불러냈다.
청년은 77년 7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기능올림픽 기계제도(기계설계를 도면으로 그리는 작업) 부문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금메달을 따냈다.
스무살 청년은 지금 휴대폰 외장을 만드는 중소기업의 대표가 됐다. 긴 세월이 흘렀지만 기계에 대한 열정과 집념은 스무살 청년 때 그대로다. 이홍우(50) ㈜코아테크 대표. 30년 동안 기계제도 부문 발전에 기여한 그는 18일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선정하는 ‘이달의 기능한국인’에 뽑혔다.
“김포공항에서 서울시내까지 카퍼레이드도 하는 등 당시 메달 땄을 땐 요란했죠. 기능인에 대한 대접도 좋았어요. 요즘은 국내ㆍ외 기능대회에서 수상하고도 일자리를 못 얻는 후배들이 많아 안타까워요.”
이 대표는 안양공고 3학년이던 75년 금성통신(현 LG전자)에 들어갔다. 96년 퇴직 때까지 21년 동안 이곳에서 일했다. 77년 동탑산업훈장을 시작으로 LG전자 사장 표창(86년), 경기도지사 표창(2000년),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한국위원회 표창(2002) 등 상도 많이 탔다.
코아테크를 세운 건 96년. 대기업에만 있던 그에게는 모험이었다. 그는 성공한 기능인에서 능력 있는 경영인으로 멋지게 변신했다. LG전자와 팬택의 휴대폰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휴대폰 관련 실용신안 3건과 의장등록 1건도 갖고 있다.
그는 실업계고교와 이공계 대학 등에서 특강을 많이 한다. 안 불러 줘도 자청해서 할 때가 많다. 현장 교육에 목말라 하는 학생들에게 산 지식을 가르쳐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기능은 끈기와 인내가 필요한데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가볍게 직업을 선택하는 것 같다”며 “자기에게 맞는 기술을 확실하게 터득하고 연마하는 등 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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