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주한 유엔군사령부는 사실상 서류상 기구에 불과하다. 1978년 한미연합사가 창설되면서 주한미군과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모두 연합사에 넘기고 한국전 참전 15개국에서 보내온 20여명의 연락장교단과 10명의 군사정전위원회로 정전협정 관리ㆍ감독 기능만 맡고 있다.
유엔사를 전시조직으로 만들겠다는 벨 사령관의 언급은 이런 기능의 유엔군사령부에 전시 작전통제기능을 부여, 한반도 방위 임무를 연합사체제 이전으로 돌리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의 유엔사 강화 구상은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 논의가 시작된 이래로 줄곧 제기돼 왔다. 한국군이 전시 작전권을 단독으로 행사하고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한미 양국군은 각기 독자 사령부를 구성, 유사시 주한미군은 한국군 주도의 전쟁을 지원하는 역할만 할 것이라고 한미 양국은 강조했다.
하지만 과연 주한미군이 유사시 한반도에서 독자적인 군사활동을 포기하고 한국군의 작전계획을 지원하는 역할에 머물지는 의문이 적지 않았다. 도리어 전문가들은 전시 작전권이 전환되더라도 주한미군은 유엔사를 통해 전쟁에 개입할 것으로 분석했다. 상지대 서동만 교수는 “한국에서 교전이 벌어질 경우 실질적으로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유엔사는 ‘정전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군사적 개입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취임 이후 줄곧 유엔사 강화를 주장해온 벨 사령관도 정전유지라는 유엔사의 고유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유엔사의 역할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번에도 그는 “전시 작전권이 전환되면 한국군 전투부대에 대한 즉각적인 접근이 불가능해 정전을 신뢰할 만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벨 사령관은 “유엔사령관은 모든 유엔 전력에 대한 작전권을 보유해야 하며 지금과 마찬가지로 국가급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며 유엔사가 유엔사가 독자적인 작전계획을 수립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은 현재 유엔사가 수행하고 있는 정전관리 업무 대부분을 한국군에 넘기는 방안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벨 사령관도 9일 기자회견에서 유엔사의 주요 임무인 “비무장지대(DMZ)관리나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정찰임무를 수행할 때 앞으로는 한국군만이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유엔사의 정전관리 기능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국방부측도 유엔사의 정전협정 관리업무를 한국측이 떠맡는 문제를 미측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벨 사령관의 구상은 전시 작전권 전환에 따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 유엔사의 정전관리 임무를 한국군에 대거 이양하는 대신 정전유지를 명목으로 유엔사를 전시조직으로 재정비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곤 기자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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