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계 터키 언론인 흐란트 딩크(53) 암살 사건으로 터키가 국제사회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이 사건으로 터키 내 대표적 소수 민족인 아르메니아인의 인권 문제가 부각되면서 유럽연합(EU)에 가입하려던 터키 정부의 계획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터키 경찰은 19일 암살된 딩크의 살해 용의자로 오군 사마스트(16)를 흑해 연안의 삼순시에서 20일 긴급체포했다고 밝혔다. 아르메니아어와 터키어로 발행되는 주간지 ‘아고스(Agos)’ 발행인인 딩크는 19일 낮 이스탄불 시슬리에 있는 신문사 건물 입구에서 괴한이 쏜 권총 3발을 머리와 목에 맞고 숨졌다. ‘1915년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쳐 온 딩크는 지난해 아고스 지에 터키인들이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했다는 기사를 쓰면서 사건을 공식화해 논란을 일으켰으며 터키 극우주의자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아왔다.
터키 정부는 이런 이유로 딩크를 국가모독죄로 기소했으며, 법원은 지난해 5월 항소를 기각하고 집행유예 6개월을 선고했다. 터키 정부는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도 같은 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
터키 경찰에 따르면 범행을 자백한 사마스트는 딩크를 암살하기 직전 아고스 신문사를 찾아 앙카라 대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건물 밖에서 기다리다 권총으로 쏴 살해했다.
터키 정부는 사건 발생 32시간 만에 레세프 타이프 에르도간 총리가 직접 방송에 출연, 용의자 검거 사실을 알리는 등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인들과 국제인권단체, EU 회원국들이 1915년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을 재거론하며 터키를 비난해 외교문제로 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딩크가 10일 칼럼을 통해 자신이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고 쓴 지 며칠 만에 암살돼, 터키 정부는 더욱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EU 회원국들은 터키 정부에 EU 가입 조건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 체계를 개혁하고,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에 대해 사과할 것을 내세웠다. 하지만 딩크 암살 사건으로 터키의 EU 가입의 꿈은 한 발 더 멀어지게 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아르메니아 정부와 의회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터키 정부를 강력히 비난했다.
아르메니아 의회 티그란 토로스얀 의장도 “딩크 암살은 터키가 EU 가입을 꿈도 꿀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비난했다. 5,000여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은 20일 이스탄불과 앙카라에서 가두시위를 통해 터키 정부를 규탄했으며 아르메니아인의 정신적 지도자인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메스롭 2세는 15일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의회에서 아르메니아 학살사건을 ‘집단학살(제노사이드)’로 규정해 터키를 압박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직접 나서 “터키는 이제 가장 용감하고 자유로운 목소리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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