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막무가내 스타일이 다시 진면목을 드러냈다. 부시 대통령은 최근 자신이 제시한 이라크 미군 증파안이 의회의 거센 반대에 부딪치자 “의회의 희망과는 관계없이 나는 대통령으로서 행동할 권한을 갖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의회의 지지 없이도 군대를 파견할 권한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는 “의회가 나를 막으려 하는 것을 잘 알지만 나는 이미 결정을 했고 그대로 전진할 것”이라며 거듭 ‘마이웨이’를 외쳤다.
●워싱턴과 서울의 닮은꼴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강경파인 딕 체니 부통령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거들었다. 그는 “대통령은 최고사령관으로서 무력 사용과 군대 파견 등에 대한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한다”며 “의원들의 비판은 부시 대통령의 결정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미국 정ㆍ부통령의 발언을 다소 장황하게 옮긴 것은 이런 워싱턴의 모습이 태평양 저 너머 서울에서 연출되고 있는 장면과 적잖이 닮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기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노 대통령도 야당의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임을 앞세워 2월중 개헌안을 발의할 태세다.
평면적 비교가 무리일 수 있고 서로 비교되는 것에 대해서 두 대통령 모두 불쾌하게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두 지도자는 하나같이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는 데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또 훗날 역사가 자신을 평가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은 나머지 미 국민의 3분의 2가 증파안에 ‘아니오’라고 대답을 해도 개의치 않는다. 한국의 사정도 비슷해서 노 대통령은 연일 ‘임기 내 개헌’에 대해 자신이 옳은 이유를 홍보하느라 여념이 없다.
물론 두 경우 모두에서 반대하는 세력이 더 합리적이고 국가를 위해 나은 판단을 했다고 단정지을 근거는 없다. 부시 대통령의 결정은 ‘도박’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마치 기적처럼 성공할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의 연임제 개헌 제안에도 국내 여론조사 수치가 말해주듯 무시 못할 명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두 대통령의 독선과 자업자득
그러나 두 대통령의 방식에는 민주적 절차와 과정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점 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합의를 이룰 시간이 없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가 된 사안이 최근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닌 만큼 설득력은 떨어진다. 민주 사회에선 목적에 이르는 과정이 목적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노 대통령이 ‘정략적’이라고 비난을 받고 있으나 반대하는 사람들의 ‘정략’도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있다. 한국 야당으로선 개헌이 성공해 대선판이 흔들리고 갑자기 노 대통령의 치적이 생겨나는 상황이 결코 달가울 리 없다. 미 민주당도 부시 대통령의 막판 기사회생을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략이 먹히게 된 데는 그 동안 확인된 두 대통령의 계속된 독선과 실정, 신뢰 상실이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자업자득인 것이다.
고태성ㆍ워싱턴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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