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였던 고건 전 총리가 새해 벽두에 돌연 불출마 선언을 한 것은 대선 레이스의 역동성과 불가측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
고 전 총리가 이렇게 일찍 대선 레이스에서 이탈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빅3’주자 중 한 사람인데다 지지율 선두권을 달리던 여권의 가장 유력한 주자가 중도 포기한 것은 파란을 일으키는 일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고건의 낙마는 올해 대선이 어느 때보다도 변화무쌍하게 전개될 것임을 예고하는 전조로 보는 시각이 있다. 1997년 조순, 2002년 이인제 후보의 중도 포기 사례가 있긴 하지만 이는 대선 직전이거나 경선 레이스 과정에서 일어났다. 대선 11개월 전에 포기를 선언한 고 전 총리의 경우와는 다르다.
특히 이번에는 과거 3김씨처럼 확실한 지지 기반을 가진 주자들이 없기 때문에 대선 정국이 요동칠 가능성이 더욱 높다.대선주자들의 지지율이 출렁이고, 정치적 이합집산이 이뤄질 개연성도 높다.
지지율이 출렁이는 과정에서 주자들의 중도 포기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 전 총리의 불출마는 한국 정치에서‘여론조사 지지율이 대선 정국의 슈퍼 파워’로 굳어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고 전 총리 중도 포기의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지지율 하락이다. 이는 일면 여론조사가 정치의 선행지수 역할을 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면 여론조사가 이미 대선의 예비경선 효과까지 갖는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올 대선 과정에서 여론조사 지지율에 따라 대선을 포기하는 주자들이 줄줄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선 도 치르기 전에 여론조사 수치에 굴복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는 “미국의 경우 예비경선 초반부터 지지율이 낮게 나오면 주자들이 포기하는 사례가 이미 많다”며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정몽준 후보단일화 때부터 여론조사의 중요성은 나타났고, 올 대선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 전 총리 낙마 사태로 한나라당 독주 양상이 벌어질지 여부도 예의 주시할 점이다. 여당은 늘 대선은 ‘51대49’싸움이라고 강조해왔다. 본선에서는 박빙의 싸움을 해볼만하다는 주장이다. 1997년과 2002년 대선 모두 접전이었다는 데서 근거를 찾는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여권의 대통합’과 ‘좋은 후보’라는 두 가지 조건 충족을 전제로 한다. 고 전 총리 낙마로 두 가지 요건을 채우기가 쉽지 않게 됐다. 때문에 대선 정국이 한나라당의 독주 체제로 전개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반대 시각도 만만치 않다. 고 전 총리의 낙마가 한나라당 분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강원택 숭실대 정외과 교수는 “고 전 총리의 낙마는 이명박 박근혜 두 주자의 경쟁을 가열시키는 촉매가 될 것”이라며 “여권에는 새 인물을 띄우기가 편리해진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독주 체제로만 가기 어렵다는 뜻이다. 더구나 여야 모두 분열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어 대선이 양강 구도와 다자 구도 가운데 어느 쪽으로 전개될 지 전망하기 어렵다. 때문에 대선에서 여당과 한나라당 후보가 접전을 벌일지 아니면 한나라당 후보의 분명한 우세가 지속될지 여부는 여야 정당 내부의 단결 여부와 태도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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