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애니메이션 <천년여우 여우비> 를 보기 전에 풀어야 할 오해 한가지. 제목과 달리 주인공 여우비(목소리 연기 손예진)는 천년 묵은 구미호가 아니다. 백년을 살짝 넘게 산, 그래서 꼬리도 다섯 개에 불과한 구미호 아닌 구미호다. 사람 나이로 치면 열 살. 그러나 둔갑술을 비롯한 신통력은 어른 구미호 못지않다. 자유자재로 사람으로 변하고 육중한 버스를 날게도 한다. 언제든 사람을 홀릴 능력을 지녔지만 사춘기 여우비는 인간의 영혼을 뺏아야 할 운명엔 별 관심이 없다. 대신 우연히 만난 소년 황금이(류덕환)에게 야릇한 감정을 느끼며 가슴 설렌다.
<천년여우…> 는 그림만으로도 관객을 매혹한다. 섬세하게 그려진 수채화풍 화면은 따스하게 가슴을 적시며 작은 탄성을 만들어낸다. 나지막한 산이 올망졸망 모여 이룬 산등성이, 퇴락했지만 아련한 추억을 품고 있는 듯한 분교의 모습, 지방 소도시의 좁은 도로와 구불구불한 골목길 등 친근한 풍경이 눈동자에 오래 머문다. 큰 눈망울을 지닌 등장인물과 실수로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요요 등 앙증맞은 캐릭터도 눈을 사로잡는다. 3년의 시간을 쏟은 정성이 화면 곳곳에 묻어난다. 근사한 비주얼만으로도 <천년여우…> 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반보 전진을 알린다.
아쉬움도 있다.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해 얽히고 설키는 사연을 담아내기에 85분의 상영시간은 버겁다. 어린 구미호와 소년이 목숨을 건 우정을 나눈다는 한국적 소재의 신선한 이야기가 산만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기술적 완성도를 갖추었으나 화술은 빈약한 한국 애니메이션의 단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몇몇 장면도 눈에 거슬린다. 하늘을 나는 버스는 <이웃집 토토로> 의 고양이 버스를, 영혼들이 모이는 상상의 세계 ‘카나바’의 수문장들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을 떠올리게 한다.
2002년 <마리 이야기> 로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그랑프리를 수상한 이성강 감독이 연출했다. 재일동포 음악가 양방언은 음악감독을 맡았다. 25일 개봉, 전체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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