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전 국무총리가 정계 은퇴 선언 직후 서울을 떠났다. 언론과의 접촉도 끊었다. 그러나 정가에선 고 전 총리가 대선 출마를 접게 된 나름의 사연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새해 첫날 앞 다퉈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고 전 총리의 지지도는 최악이었다. 다음날 민주당 신중식 의원이 새해 인사차 고 전 총리를 찾았다. 신 의원은 “반전의 기회가 있으니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국면을 돌파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돌아 온 고 전 총리의 답변은 “사즉사(死卽死)도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신 의원은 이때 고 전 총리의 대선 불출마를 직감했다고 한다.
이후 고 전 총리는 거의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칩거에 들어갔다. 시중에서 와병설, 대선 불출마설 등 온갖 루머가 나돌았지만 대응을 삼갔다. 참모들은 속이 타 들어갔다. 참모들은 서둘러 신당창당기획단 로드맵을 만들어 제시했다. 하지만 고 전 총리는 고개를 저었다. 민영삼 공보팀장은 고 전 총리가 종종 “정치인들이 나를 이용하려고만 한다”는 불만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고 전 총리는 우리당 김성곤 의원에게도 “정치인들이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인 조현숙씨는 “관료 출신인 남편 생리에 (정치인들이) 잘 안 맞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갈등도 부담이었다. 김덕봉 공보수석은 “‘범여권 후보’라는 딱지가 붙어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대통령마저 자신을 ‘잘못된 인사’라고 몰아 붙이며 총리로서의 업적을 폄하하는 것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전했다.
지난 여름 폐렴에 걸려 각혈까지 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고, 참모들에게 활동비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자금사정도 결단을 재촉한 것으로 보인다. 고 전 총리는 “나 때문에 선거과정이나 결과가 국민의 뜻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며 “(포기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하는 것이 국민들과 지지자들에 대한 도리”라고 말했다고 김 수석은 전했다.
고 전 총리는 현재 전남에 있는 지인의 별장에서 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수석은 “주말까지 이곳에 머무르면서 생각을 정리한 후 서울로 올라와 (정치활동을) 정리하는 작업을 할 것”이라며 “폴란드, 몽고 등 외국 방문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 전 총리는 이제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신재연 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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